무엇을 먹을지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먹을지에 대한 이야기
영국 음식은 맛없다는 말이 너무 많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반박하기도 귀찮아질 때가 있다. 재미있는 건, 막상 영국에 살아보니 맛이 없어서 문제라기보다 뭘 추천해야 할지 애매해서 문제라는 쪽에 더 가깝다는 거다. 현지인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생활 식당들—그로서리 밀딜, 프랜차이즈 카페, 체인 버거집, 테이크어웨이 인도음식, 펍에서 간단히 먹는 피시앤칩스—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건 크게 불만이 없다. 바쁘게 출근하고, 점심시간에 줄 서서 샌드위치 집어 들고, 퇴근길에 케밥 하나 사 들고 들어가는 풍경. 그런 식당들은 여기 살면 이런 걸 먹고 산다는 생활 샘플로는 충분하다. 다만 누군가가 비행기를 타고, 휴가를 내고, 시간을 들여 런던까지 왔을 때 꼭 이걸 먹어보라고 권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그 어정쩡한 간극이 있다.
그래서 종종 마치 이 나라는 미식 불가 판정을 받은 것처럼 취급된다. 아직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사람도, 몇 끼 대충 때우고 돌아간 사람도, 영국 음식은 원래 그렇다는 결론에는 쉽게 합류한다. 어떤 도시를 이해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게 사실은 맛인데, 정작 여기에서는 그 과정 자체가 생략된다. 오기 전부터 이미 실망할 준비를 해버린 상태에서, 이 도시의 음식과 문화를 바라보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런던에 오기 전에 꼭 검색을 한 번 거친다. 런던 가성비 맛집, 현지인이 추천하는 식당, 실패 없는 한 끼. 그렇게 해서 결국 도착하는 곳이 늘 비슷하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곳들 대부분은 맛집이라기보다 냉동식품의 연장선 같은 맛이 난다. 양은 넉넉하고 자극은 적당하지만, 입안에 남는 건 인상적인 기억이 아니라 적당한 가격에 배는 채웠다는 정도의 감각이다.
Wasabi나 Itsu에서 스시를 먹으면, 차가운 밥 위에 인공적인 맛이 살짝 스민 생선을 몇 점 먹게 된다. 프랑코 만카의 피자는 괜찮게 맛있지만, 런던까지 와서 꼭 먹어봐야 한다고 추천할 정도냐고 하면 고개가 조금 기운다. Pret의 샌드위치는 적당히 먹을 만하지만, 영국에 오면 꼭 경험해야 할 가성비 맛집과는 거리가 멀다. 배가 고파서 급하게 때우는 한 끼라면 모르겠다. 그런데 비행기 타고 날아온 여행자가 몇 날 며칠 아껴둔 여행 예산으로 이런 식으로만 먹게 된다면, 영국은 진짜 맛없다더니 역시 그렇다는 편견만 더 공고해질 것이다. 미국에 놀러온 사람에게 맥도날드, 버거킹, 타코벨만 잔뜩 추천해놓고 미국의 맛이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느낌이다. 같은 돈이면, 사람들은 보통 조금 더 영혼이 느껴지는 밥을 원한다.
생활 식당은 생활용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점심시간 30분 동안, 회의 두 개 사이에, 퇴근길에 지친 몸으로 들러서 배를 채우기에 딱 좋은 구조다. 밀딜은 그중에서도 좋은 발명이다. 샌드위치 하나, 과자나 작은 디저트 같은 사이드 하나, 음료 하나를 묶어서, 개별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파는 시스템. 웨이트로즈든 테스코든, 계산대 앞에서 영수증을 보면 지갑이 감당하기에 나쁘지 않다 싶은 숫자가 찍힌다. 실제로 영국인들은 이런 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산다. 프랜차이즈 빵집의 소시지 롤, 케밥집의 치킨 랩, 대충 나눠 먹는 치킨 버거와 감자튀김. 이 모든 건 영국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생활 샘플이다. 그러나 여행자가 굳이 경험해야 할 영국 음식이냐고 물으면, 그건 전혀 다른 문제다.
조금 냉정하게 말해 보면, 생활 식당들은, 여기 사는 입장에서는 충분하다. 출근길에 Pret 샌드위치, Costa 커피 한 잔, 점심엔 밀딜, 저녁엔 가끔 Nando’s. 이런 루틴은 나름의 안정감이 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건, 일상의 중간에 끼어드는 며칠이 아니라, 일상을 벗어나서 일부러 시간을 들여 경험하는 며칠이다. 그 며칠을 위해 돈과 시간을 들여 온 사람에게, 현지인이 먹고 사는 평균선만 보여주는 건 조금 성의가 없다. “지금 여기서 우리 이렇게 먹고 살아요”를 보여주는 데에는 좋지만, “이 도시의 맛을 느껴보세요”라는 초대장으로는 한참 모자란다. 솔직한 반응은 이럴 수 있다. 같은 돈이면 서울 편의점에서 더 잘 먹겠는데? 뉴욕이나 파리에서도 이런 체인 음식만 먹고 돌아오면 분명 욕을 먹을 텐데, 이상하게 영국만 오면 원래 이런 나라라는 합리화가 따라붙는다. 영국 음식이 비싸고 맛없다는 편견을 깨보겠다며 내미는 리스트가, 오히려 그 편견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다른 도시를 떠올려 보면 그 차이가 더 선명해진다. 파리를 가면, 요즘 물가를 감안해도 여전히 다른 곳보다 저렴하고 수준 높은 크루아상과 바게트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동네 빵집에서 아무 데나 들어가도 버터와 밀가루의 조합이 주는 기본값이 일정 수준을 넘는다. 뉴욕에서는 지하철역 근처에서 파는 1달러짜리 (요새는 그보다 오른 가격의) 슬라이스 피자를 들고 나와, 짜고 기름진 한 조각으로 도시의 분주함을 함께 맛 볼 수 있다. 싸고, 빠르고, 그 도시의 캐릭터가 어느 정도 담긴 상징적인 한 끼. 그런 의미에서 런던에는 이 도시를 느끼려면 이 가격대에서 이걸 먹어봐야 한다라고 말해줄 만한 메뉴가 상대적으로 희미하다. 피시앤칩스, 선데이 로스트, 스콘, 애프터눈티, 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같은 것들이 있긴 하지만, 가격이 애매하게 비싸거나, 동네마다 편차가 크거나, 대중적인 퀄리티가 일정하지 않다.
영국을 겪은 바에 따르면, 이 나라는 이민자가 많다는 점에서 분명 매력적인 식문화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이민자들의 색이 옅어진, 어정쩡하게 현지화된 음식이 오래 버티는 경우도 많다. 인도,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온 요리가 이 도시를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어야 할 것 같은데, 막상 접시 위에 올라왔을 때 어느 맛을 기준으로 잡은 건지 모호해지는 가게들도 적지 않다. 어느 나라 음식이라고 하기엔 향신료가 조심스럽고, 영국 음식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그 사이. 여행자 입장에선 먹을 순 있는데 꼭 여기서 먹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 쉬운 맛이다.
그렇다고 영국 전체를 싸잡아 욕할 수도 없다. 구석구석 숨겨진 집들은 언제나 그렇듯 실제로 존재한다. 어느 골목 모퉁이의 중동 식당에서 나오는 양고기 향, 동네 작은 아프리카 레스토랑에서 푹 끓인 스튜의 깊이, 잘 튀겨낸 생선에 감자가 제대로 어우러진 동네 피시앤칩스 가게. 간판도 대단하지 않고, 인터넷에 화려한 후기 하나 없는 집인데, 접시를 앞에 두고 나면 여긴 진짜다 싶은 곳들. 인도 음식도 디슘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패를 감수하고 돌아다니다 보면 마음에 남는 집이 분명히 생긴다. 양꼬치가 훌륭한 집, 선데이 로스트를 의외로 잘하는 작은 펍, 동네 사람들이 줄 서는 빵집. 문제는 이런 집들을 찾는 데 시간이 들고, 실패도 몇 번 감수해야 하며, 나 자신도 음식에 관심과 에너지를 어느 정도 투자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나라가 완벽한 맛을 제공하느냐 하면, 그런 곳은 없다. 결국 다 거기서 거기다. 이민자들의 음식은 현지에서 또 한 번 변형되고, 어떤 도시의 음식은 전반적으로 간이 세지고, 어떤 도시는 안전한 방향으로 맛이 옅어진다. 그러니 중요한 건 어디가 제일 맛있냐보다 어떤 태도로 먹을 거냐는 것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가성비만 따져서 익숙한 것, 실패 가능성이 적은 것만 고르면, 여행 내내 무난한 맛의 안전지대 안에서만 맴돌게 된다. 물론 그 나름의 안심이 필요할 때도 있다. 다만 그 안심이 여행 전체를 대신해 버리면, 돌아와서 남는 건 만족하지 못한 입과 조금 가벼운 영수증뿐이다.
새로운 문화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음식은 그 나라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입구 중 하나인데, 그 입구를 가성비로만 채워넣으면, 도시 전체가 얕게 느껴진다. 영국 음식이 맛없다더라, 런던은 맨날 이런 것만 먹냐, 하는 편견은 그렇게 생긴다. 그리고 그 편견을 확인시켜주는 리스트가 또 만들어지고, 다음 여행자는 그 리스트를 들고 도착한다. 어느 순간부터 “영국 음식 = 맛없음”이라는 공식이 거의 의심 없이 돌게 된다. 사실은, 먹는 사람의 태도와 선택이 만든 세계인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비싸고 근사한 레스토랑만 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가격대별로 적당한 선택지를 고르는 건 필요하다. 다만 무조건 싸게와 무조건 비싸게 사이에 엄청나게 넓은 영역이 있다. 내가 오늘은 어떤 경험을 하고 싶은지, 어떤 맛을 기억으로 가져가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한 번쯤 묻고 선택해 보는 것. 프랜차이즈에서 허겁지겁 밀딜을 먹는 날도 있고, 동네 노포를 찾아가 시간을 들여 밥을 먹는 날도 있고, 집에서 재료를 사와 직접 해 먹어보는 날도 있을 수 있다. 그 모든 선택들이 모여서 내가 이 도시에서 먹고 산 시간을 만든다. 새로운 문화 앞에서 싸고 실패 안 하는 옵션만 붙들고 있으면, 그 문화의 진짜 얼굴은 끝내 만나기 어렵다.
그럼에도 솔직히 영국에서 사먹는 음식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은 편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여러 번의 맛집 탐방을 떠올려보면, 고개를 갸웃했던 경험도 많다. 그래도 그 와중에 두세 번은 다시 가고 싶은 집들이 생겼다. 다른 나라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맛, 이 도시의 리듬과 공기 속에서만 가능한 조합도 있다. 가성비 집이라고 부르기는 애매하지만, 이상하게 생각날 때가 있는 식당, 소개하기 망설여지면서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동네 가게. 적어도 이 도시만의 결이 담긴 곳은 분명히 있다.
결국 영국 음식에 대한 감상은 이런 쪽으로 정리되는 것 같다. 이 나라는 냉동식품 같은 맛과 숨겨진 한 끼가 동시에 섞여 있는 곳이고, 체인과 밀딜이 일상을 지탱하는 동시에, 골목 어딘가에는 뜻밖의 맛집들이 숨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어느 쪽을 만나고 돌아가느냐는, 꽤 많이 나 자신의 태도에 달려 있다. 여행객이라면, 특히 평소에 익숙한 맛만 붙잡기보다, 한 번쯤 다른 것을 도전해보았으면 좋겠다. 실패한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실패와 성공이 섞인 시간이, 결국 그 도시와 나 사이의 기억을 만든다.
무조건 비싼 곳을 가라는 말도 아니고, 영국을 과대 포장하자는 말도 아니다. 다만, 몇 군데의 경험만으로 영국 음식은 이렇다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 도시의 맛과 사람들의 손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 어떻게 먹을지, 무엇을 먹을지보다 먼저, 어떤 태도로 이 도시의 밥을 대할지부터 정하면 좋겠다. 그러면 영국 음식은 그저 맛없다더라가 아니라, 생각보다 복잡하고, 그래서 좀 더 궁금한 무언가로 남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