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맛 대신 천천히 우러나는 맛을 배우며 생각하게 된 것들
영국에 와서 제일 먼저 몸으로 느낀 변화는 날씨도, 언어도 아니고 채소였다. 마트에 가서 토마토와 양파, 감자 몇 가지만 집어 와도 색이 살아 있고, 재료의 향이 진했다. 값도 생각보다 싸다. 같은 돈으로 사려면 미국에서는 중국 마트를 가거나 대용량으로만 사야했는데, 여기서는 내가 먹을만큼의 신선한 재료로 살 수 있어 매일 장을 보러 가도 재미가 있다. 과일도 그렇다.
처음엔 음식이 너무 밋밋했다. 간이 덜 돼 있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소금이 빠진 것 같고, 설탕이 절반쯤 사라진 것 같고, 향신료도 그냥 대충 올려둔 것 같은 느낌. 미국에서 단짠과 기름과 소스의 강렬함에 단단히 길들여진 입으로 먹기에는, 영국 음식은 하나같이 심심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사람이 무섭게도, 혀와 몸이 서서히 적응했다. 자극적인 맛이 줄어들자, 그동안 잘 느끼지 못했던 미세한 차이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밋밋하다 생각했던 음식들에서, 재료 각각의 향이 조금씩 살아나고, 같은 소금이어도 종류에 따라 입안에 남는 감촉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강한 맛에 가려져 있던 미묘한 결들이 서서히 드러나는 느낌이다.
입맛이 바뀐다는 건 생각보다 큰 사건이다. 뉴욕에서는 진한 커피에 절여져 살았다. 뉴욕식 커피 특유의 몇 배는 더 쓰고 떫고 신 맛. 아침마다 그걸 들이켜야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 영국에 와서는 어느새 커피보다 차를 마시는 시간이 길어졌다. 진한 향을 먼저 맡고, 크림을 조금 섞어 부드럽게 마시는 차. 물이 달라서인지, 티백 하나를 넣었을 뿐인데 놀랄 만큼 잘 우러난다. 커피를 줄이니 머리가 조금 더 맑아지는 느낌도 있다. 초콜릿도 그렇다. 허쉬, 스니커즈 같은 강렬한 단맛에 익숙했던 입이, 점점 우유 맛이 더 살아 있는 캐드버리 쪽으로 기울어 간다.
변화는 시리얼에서도 느낀다. 우유를 붓기만 하면 금방 설탕물이 되던 시리얼들. 처음 영국 시리얼을 먹었을 때는 단맛이 너무 약해서, 이게 맞나 싶었다. 그런데 같은 제품을, 같은 우유에 말아 먹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 안의 단맛이 또렷해진다. 설탕의 단맛을 줄이니 고소함이 올라온다. 우유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이상하게 소화가 안 돼서 일부러 a2 우유를 사 먹어야 했다. 여기서는 굳이 고르지 않아도 대부분 더 고소하고, 속도 편안하다. 케첩조차 느끼한 단맛 대신 정말 토마토 맛이 난다. 익숙한 제품의 낯선 원래 얼굴을 하나씩 마주하는 기분이다.
사실 음식은 재료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 재료 하나를 사더라도 손에 쥐었을 때 묵직하고 향이 살아 있는 것을 고르는 일.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단계에서 이미 마음의 절반을 쓴다. 유기농이라고 해서 무조건 더 맛있지는 않지만, 신선한 재료가 가진 힘은 분명히 있다. 미국에서는 작고 싱싱한 채소를 찾으려면 더 멀리, 더 비싸게, 더 많이 사야 했는데 이곳에서는 적당한 양을 적당한 값에 살 수 있다. 덕분에 버려지는 것도 줄었다.
물론 아쉬운 것도 있다. 미국처럼 아시안 채소가 다양하게 깔려 있지는 않다. 시래기, 부추, 마늘쫑 같은 것들을 한 번에 만나기는 쉽지 않다. 대신 원래 그다지 즐기지 않던 채소의 맛을 다시 알아가는 중이다. 브로콜리, 방울 양배추, 콜리플라워 같은 것들이 거창한 양념 없이도 각자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이곳에 와서 새삼 느낀다.
입맛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이 떠오른다. 한국에 들어간 지는 이미 십 년이 훌쩍 넘었다. 그 사이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모두들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음식이 전체적으로 많이 달아졌다고. 뉴욕이나 미국 전반의 음식도 짜고 달다고 말하지만, 지금은 한국이 더 심하다고. 직접 가서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여러 사람의 입에서 같은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상상이 된다. 맛의 기준이 점점 획일화되고, 단조로워지고 있다는 느낌. 기본 양념이 너무 강해져서 깊은 맛이나 재료 본연의 맛이 뒤로 밀려나는 풍경.
맛있는 것에 대한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금은 강한 단맛, 짠맛, 기름진 맛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맛의 전부처럼 취급된다. 뇌가 바로 알아챌 수 있는 맛, 한두 입 만으로 중독될 수 있는 맛이 시장을 지배한다. 순하고 담백한 맛, 느리게 우러나는 맛, 재료 자체의 향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으면, 그런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은 늘 수익과 생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좋은 재료와 정성을 들인 음식일수록 더 비싸고, 그래서 더 안 팔리고, 그래서 더 사라진다. 그러면서 자꾸 이런 소리를 한다. 좋은 음식을 찾기 힘들다고, 예전 같지 않다고. 좋은 것을 알아보는 안목이 시장을 만들고, 그 시장이 쌓여야 더 나은 선택지가 생긴다는 단순한 사실을 자주 잊는다. 그러다 보니 사업자는 빠르게 팔리는 맛을 택하고, 소비자는 자극적인 맛에 더 길들여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내가 먹는 것에 조금 더 신경을 쓰는 작은 행동이다. 재료의 이름을 한 번 더 읽어 보고, 요리에 들어간 것을 상상해 보는 것. 자극적인 맛이 당길 때는 그냥 정직하게 그 욕구를 인정하고, 다만 그게 매 끼니의 기준이 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 영국 음식이 싱겁게 느껴질 때 소금을 더 치고, 때로는 마라향이 미친 듯이 끌리는 날도 있다. 그건 그대로 두되, 내 혀가 완전히 자극적인 맛에만 종속되지 않게 더 담백한 날들을 스스로에게 선물해 보는 것.
요즘의 나는 그동안 단짠과 카페인에 절여 살다가 늦게나마 디톡스를 하는 기분으로 하루를 보낸다. 혀가 조금씩 예민해진다고 할까, 거친 자극에 무뎌져 있던 감각이 다시 살아난다고 할까. 싸지만 질 좋은 재료들을 마주하면서, 음식에 대한 태도도 같이 바뀐다. 오늘은 뭘 먹을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어떤 재료를 쓰고 싶고, 내 몸은 지금 어떤 맛을 원하고 있는지 한 번쯤 물어보게 된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식탁은 없을 것이다. 할인 행사와 광고, 유행과 알고리즘이 입맛에도 끊임없이 개입한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일지 모른다. 내 혀가 무엇을 좋아하도록 길들여지고 있는지, 가끔은 의식적으로 확인해 보는 것. 단짠단짠 대신, 오늘은 조금 덜 짜고 덜 단 것을 선택해 보는 것. 핫하다고 하는 식당보다 깊은 맛을 내는 곳을 찾아보는 것. 한 번쯤은 더 싱싱한 것을 고르고, 필요 이상으로 큰 포장 대신 적당한 양을 골라 담고, 자극적인 맛 대신 재료 본연의 향에 시간을 내어 주는 것. 그렇게 조금씩 선택을 바꿔 나가다 보면, 입맛뿐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도 함께 바뀌는 것 같다.
영국에서 과일과 채소를 고르며 든 생각은 단순하다. 혀가 조금 달라지니, 삶을 보는 눈도 함께 달라진다는 것. 강렬한 것만이 꼭 좋은 것은 아니고, 조용한 맛에도 설득력이 있다는 것. 원래도 맛에 민감했다 생각했지만 이제는 맛있다는 말을 할 때, 예전보다 조금 더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재료의 얼굴, 함께 먹는 사람, 요리하는 동안의 마음. 이런 것들이 한 그릇 안에서 천천히 섞일 때, 덜 짜고 덜 달아도 이상하게 더 풍요롭다.
강하고 자극적인 맛으로 하루를 견디던 시간에서 조금 물러나, 천천히 우러나는 맛을 배우는 시간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한 번에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이런 변화는 느껴진다. 점점 덜 달게, 덜 짜게, 덜 자극적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그 자리에는 언젠가, 조금 더 단단하고 오래 가는 만족감이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입안에서 시작된 작은 디톡스가, 생각과 삶의 방식까지 함께 바꿔 놓을 수 있기를 조용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