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지를 줄였더니 삶이 조용해졌다
짐을 싸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드러난다. 그건 철학적인 고백이라기보다, 물건이 남겨둔 습관의 기록에 가깝다. 아직 이삿짐은 오지 않았다. 그 덕분에 지난 두 달은 가방 두세 개로 살았다.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안 입는 옷이 없고, 안 신는 신발도 없다. 오늘 입을 옷과 내일도 입을 수 있는 옷이 전부였다. 옷장이 비어 있으니 선택이 단순해지고, 선택이 단순해지니 마음도 조용해졌다. 나는 원래 복잡한 사람이 아니라, 복잡한 옵션 속에서 복잡해진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짐이 늦게 온다는 사실이 이제는 하나의 예행연습처럼 느껴진다. 유럽 저가 항공은 짐 추가 비용이 제법 들어서, 앞으로 많은 경우 백팩만으로 움직여야 할 것 같다. 백팩 하나에 들어가는 만큼만 가져갈 수 있다는 건 어쩐지 잔인하게 공정하다. 모두에게 같은 규칙을 적용하고, 불필요한 욕심을 바로 숫자로 환산해 보여준다. 더 갖고 싶으면 돈을 내라. 더 가볍게 살고 싶으면 덜 가져가라. 단순한 조건인데, 이상하게 그게 삶 전체의 방식처럼 느껴진다. 이삿짐을 싸면서도 다짐했다. 적어도 1년은 생필품 이외의 소비를 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짐이 도착하면 풀면서 또 많이 정리하고 버릴 것 같다는 예감도 같이 들었다. 도착한 짐은 선물처럼 반갑겠지만, 동시에 내가 왜 이것들을 이고 지고 살았는지 다시 묻게 될테니.
삶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인생의 선택지를 줄이는 것인 것 같다. 너무 많은 정보와, 할 수도 있었던 수많은 선택지를 열람하지 않는 것. 그 모든 걸 알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걸 인정하는 것. 선택지가 많을수록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안해지는 느낌이 있다. 더 저렴하면서 좋은 제품이 있었을까, 조금 더 보태면 훨씬 나은 선택지가 있었을까, 지금 고른 건 손해가 아닐까. 마음은 계속 비교의 서랍을 열었다 닫는다. 열 때마다 먼지가 난다. 모든 걸 알 필요도 없고, 다 잘할 필요도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그 가벼움은 포기가 아니라, 내 삶을 내 손으로 정리하는 감각이다.
미니멀리즘은 그래서 무소유가 아니라, 소유의 기준을 드러내는 방식에 가깝다. 최소한의 물건만 가진다면 어떤 조건을 기준으로 선택하게 되는지. 그 질문은 결국 내가 어떤 인간인지 묻는 질문이 된다. 물건이 적으면 애지중지 쓰게 되고, 그러면 내 취향이 더 또렷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촉감, 내가 참을 수 없는 불편, 내가 돈을 써도 아깝지 않은 지점. 반대로 내가 순간의 흥분으로 샀다가 질려버리는 것들도 드러난다. 내 아쉬움과 후회는 대부분 제품 탓이 아니라, 내 판단을 방치한 시간에서 생겼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래서 선택지를 줄이면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가성비도, 남과 비교도, 많은 경우 내가 만든 노이즈이거나 누군가가 내게 주입한 노이즈다. 나는 그 노이즈를 내 생각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명품도 그 노이즈의 대표적인 얼굴이다. 이건 꼭 비싼 물건을 욕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비싼 게 문제라기보다, 비싼 걸 사는 이유가 점점 얄팍해지는 게 문제다. 소셜 미디어와 광고는 끊임없이 말한다. 이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이 정도는 보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들고 사진을 찍고, 칭찬을 받고, 다시 그 칭찬을 먹고 산다. 웃기다. 우리가 언제부터 물건을 통해 서로의 인간성을 확인했나. 반대로 소소한 소비는 작은 행복이라며 쉽게 정당화된다. 물론 행복일 수 있다. 하지만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방향감각이 흐려진다. 그때부터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이 나를 빠르게 달래주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줏대가 점점 없어지고, 마음은 더 쉽게 흔들린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나는 더 나를 잃는 쪽으로 기운다.
삶의 편의를 위한 물건들도 비슷하다. 분명 편해지는 물건이 있다. 하지만 사실 없어도 되는 경우가 많고, 대개는 과하다. 편하려고 산 물건이 또 다른 물건을 낳고, 그 물건을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고, 그 공간이 커질수록 관리가 늘어나고, 관리가 늘어날수록 피로가 쌓인다. 자리 차지도 쓰레기도 결국 그 결과다. 우리는 편해지려고 물건을 들였는데, 어느 순간 그 물건들이 우리의 시간을 먹고, 주의를 먹고, 마음의 여백을 먹는다. 세상에 노이즈가 너무 많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노이즈는, 세상을 넓게 보고 열린 태도를 갖는 것과는 다르다. 열린 태도는 더 많이 가지는 게 아니라, 더 많이 이해하려는 쪽에 가깝다. 반면 노이즈는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사고, 그냥 반응하고, 그냥 자랑하고, 그냥 비교하게 만든다. 생각을 깊게 만드는 게 아니라, 생각을 바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좋아함과 싫어함을 떠올리며 물건을 정리하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 내가 무엇을 남길지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시에 싫어함을 함부로 키우지 않으려면, 불필요한 선택지를 줄여야 한다. 싫어함은 옵션이 많을수록 더 쉽게 튀어나온다. 비교할 대상이 많을수록 불만은 정교해지니까. 그러니 선택지를 줄인다는 건, 소비를 줄이는 것만이 아니라 감정의 과잉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굳이 열람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닫아버리는 것. 그게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1년에 한 번쯤, 고르고 골라서 갖고 싶은 걸 사는 방식도 괜찮을 것 같다. 물건이 칭찬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정도 고민하고 사게 된 것은 내 삶에 조금은 의미있는 기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더 가치 있고, 더 소중하고, 더 의미 있겠지. 물론 그렇게 사도 짐은 또 늘어날 것이다. 나는 그걸 안다. 중요한 건 짐을 영원히 늘리지 않는 일이 아니라, 늘어나는 속도를 내가 통제하는 일이다. 무엇을 들이고 무엇을 거절할지 내가 결정하는 일. 결국 선택지를 줄이는 연습은, 내 삶의 소음을 줄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또렷하게 하는 연습이다.
다시 이 순간으로 돌아온다. 아직 이삿짐은 오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가방 몇 개로 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의 나는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충분하다. 그리고 그 충분함을 한 번 알아버린 사람은, 다시 예전처럼 살기가 어렵다. 불편해서가 아니라, 불필요함이 너무 잘 보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이삿짐이 도착하면 나는 또 버릴 것이다. 그리고 또 다짐할 것이다. 가볍게 살자고. 그러면서 또 가짐에서 오는 편안함에 익숙해질거다. 대신 필요하면 사되, 필요하다는 말부터 정확히 하자고 마음을 다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