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연습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대학도 한국에서 들어갔다가, 미국 남부의 시골에서 교환학생을 하며 한번 궤도가 꺾였다. 그 다음에는 미드웨스트의 다른 주로 편입했고, 석사도 그 곳에서 했다. 그리고 이방인이 많다는 이유로 뉴욕에 갔고, 10년 넘게 그 도시에서 일하다가 영국으로 다시 이민을 왔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묻는다. 이민 1세냐, 1.5세냐.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TCK냐. 나는 그 질문 앞에서 늘 잠깐 멈춘다. 그 질문이 나를 이해하려는 시도라기보다, 빠르게 처리하려는 절차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분류는 늘 친절해 보이지만, 삶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다. 나에게는 어디에 속하느냐보다, 어디에서 숨을 덜 참게 되느냐가 더 정확한 질문이었다.
이민 1세인지 1.5세인지 애매하다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숫자를 묻는다. 몇 살에 갔냐, 학교는 어디서 다녔냐, 시민권은 있냐, 발음은 어떠냐. 그런데 그런 분류는 대개 나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나를 어떠한 위치에 배치하려는 욕망에 가깝다. 나는 어떤 파일에 들어가야 관리가 쉬운가, 그 정도의 질문이다. Third Culture Kid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럴듯한 이름이 붙으면 혼란이 잠시 정리된 느낌이 들지만, 그 단어는 내 삶을 설명해주지도 살아주지도 않는다. 결국 남는 질문은 단순하다. 나는 오늘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은 분류표가 아니라, 매일의 선택으로만 답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뉴욕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경제의 중심이어서도, 기회가 많아서도 맞지만, 더 솔직한 이유는 이방인이 덜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이방인이 많으면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덜 특별해진다. 뉴욕은 다양성이 극단으로 가 있는 도시인데, 신기하게도 그 다양함이 그냥 흩어져 있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정체성을 만든다. 뉴요커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분명히 뉴욕 밖의 미국인들도 뉴욕이 특수하다고 했다. 빠르게 걷고, 빨리 판단하고, 서로의 사정을 길게 묻지 않는 대신 서로의 존재를 이상하게 존중하는 방식. 무관심처럼 보이는데 무례는 아닌, 그런 도시의 태도가 내게는 안도감을 줬다. 어디서 왔는지보다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했다. 그 도시의 속도와 무례함과 무심함 속에서 나는 뉴요커라는 말로 불리는 어떤 상태에 잠시 머물렀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분명 다른 무엇이었다.
영국에 오니까 정체성이 또 애매해진다. 회사에서 만나는 영국인들에게 나는 아시안보다는 미국인으로 분류되는 느낌이 있다. 업무가 미국 중심이라 더 그럴 수도 있고, 내가 체감하는 차이 자체가 한국과 영국이 아니라 미국과 영국 사이에서 더 크게 작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국은 뉴욕보다 덜 조급하고 덜 다양하다. 대신 그 덜함이 주는 안정감도 있다. 급히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기. 그 공기를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공기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애매해진다. 뉴욕에서는 애매함이 평범했는데, 여기서는 애매함이 다시 표식이 된다. 나는 여전히 나인데, 주변의 분류 방식이 바뀌면 내가 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한국은 더 복잡하다. 한국을 가지 않은 지도 10년이 넘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국은 10년 전, 혹은 훨씬 더 전의 한국이고, 그동안 한국은 바뀌었을 것이다. 사람도 바뀌는데 사회는 더 바뀌었겠지. 나는 각종 매체와 친구, 가족, 지인을 통해 단편적인 모습을 본다. 그 단편들을 모아 전체를 상상한다. 그런데 상상은 언제나 현재의 나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니 한국은 때때로 고향이 아니라, 내가 떠나온 시절이 된다. 익숙한데 낯선 장소. 말은 통하는데 마음의 속도가 맞지 않는 장면들. 그래서 나는 순수 한국인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한국과 완전히 끊어졌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나는 아직도 한국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웃고, 한국어로 미묘하게 상처받는다. 그런데 동시에 한국어로 말하는 내 사고방식은 한국에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내 말과 생각은 여기저기서 섞여 있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결은 다른 1세대와도, 2세와도, 3세와도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만 살았거나 잠시 떠나온 한국인과도 다르다. 학창 시절을 한국에서 온전히 보냈고 성인의 시작도 한국이었지만, 그 다음은 미국이었고, 그 중에서도 뉴욕이었고, 지금은 영국이다. 정작 나를 만든 시간의 대부분은 한국 밖에 있다. 정체성을 순수한 한국인이라 부르기엔, 한국에서도 늘 다름을 느끼며 살았다. 그 다름이 숨 막혔고, 그 숨 막힘이 결국 떠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나를 만든 시간의 대부분은 한국 밖에 있다. 정체성을 단일한 언어로 부르기에는, 내 사고방식이 너무 많은 공기를 마셨다. 중간은 늘 애매하다고 불리지만, 중간은 가장 많은 방향을 동시에 본다. 피곤하지만, 대신 단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속감은 내게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지만, 반드시 소속 속에서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소속보다 주체성에 가까운 안정감을 택해왔다. 이방인이라는 말이 꼭 결핍의 다른 이름일 필요는 없다. 이방인으로 산다는 건, 어디에도 완전히 기대지 않는 대신 스스로를 계속 점검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이방인인 게 뭐 어때서. 어디서든 같은 편이어야만 안심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소속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아니, 소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선명해진 부분들도 있다는 것을.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대신, 어디에서든 나를 잃지 않는 연습. 그게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끝난 결론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수정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