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시작되는 순간

삼 개월치 공백을 뜯어내며, 다시 익숙해지는 연습

by 샤누자오사무

이삿짐이 도착했다. 삼 개월 동안 기다린 박스들이 현관 앞에 쌓이자, 그제야 마음 한구석이 조용해졌다. 가방을 끌고 와서 최소한의 것만으로 생활하던 곳이, 이제는 정말 집이 되는 순간이 왔다. 집이란 원래 벽과 천장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손이 자주 닿는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고, 내 몸이 익숙한 동선이 생기고,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내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야 비로소 집이 된다.


사실 그동안 불편하지는 않았다. 지금 집은 위치가 좋다. 시내 어디를 가든 편하게 갈 수 있고, 가구도 다 들어 있고,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가제도구들이 꽤 잘 갖춰져 있었다. 내가 짐을 줄여서 가져오려고 선택했던 집이기도 하지만, 집주인이 이방인을 많이 상대해봤다는 점이 컸다. 사소한 것들을 미리 준비해 두는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오래 간다. 외국에서 처음 집을 구할 때 가장 절실한 건, 화려함이 아니라 그런 마음이다.


원격으로 집을 구하는 일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다. 직장이 있어도 영국의 신용기록이 없고, 무엇보다 집을 실제로 보여주지 않고 세를 주려는 집주인은 많지 않았다. 화면 속 사진으로는 다 멀쩡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구조가 이상하거나 습기가 심하거나, 동네 분위기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그걸 알면서도 선택을 해야 한다. 몇 번의 메시지, 짧은 통화, 애매한 설명들 사이에서 이 집이 내 삶을 잠시 담아 줄 수 있을지를 가늠한다. 그런 과정을 통과하고 나서야, 나는 여기까지 왔고, 그래서 그동안은 무리 없이 살 수 있었다.


그렇지만 무리 없이 산다는 것과, 진짜 내 삶이 놓이는 자리가 있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없는 대로도 충분히 살아지는구나를 배우는 동안에도, 이상하게도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사고 소모하게 되는 건 변하지 않았다. 생필품이라는 이름으로 늘 뭔가가 집에 들어왔다. 처음엔 작은 컵 하나, 수건 몇 장, 세제 한 통. 그러다 보면 어느새 또 하나의 박스가 도착해 있고, 그걸 뜯으며 나는 내가 정말 필요한 것을 샀는지, 아니면 불안을 잠깐 덮기 위해 산 건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그러다 이삿짐이 왔다. 박스가 집 안 가득 내려지고 나니, 동시에 두 가지 감정이 왔다. 내 물건이 주는 편안함과, 왜 이렇게 짐이 많냐는 투정. 이 모든 것을 다 이고지고 살았다는 사실이 우습고도 놀라웠다. 게다가 짐 쌀 때 이미 엄청나게 솎아 버리고 왔다는 함정이 있다. 버릴 것도 어느 정도는 정리하고 왔는데, 남은 것들도 결국 이렇게 많다. 없는 줄 알았던 삶은 사실 내가 잠시 선택한 방식이었고, 내 물건들이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박스를 뜯고 정리하는 데만 이틀이 꼬박 걸렸다.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왔으니, 넣어둘 곳이 마땅치 않은 물건들이 생긴다. 어디에 두어야 할지 한참 들고 서 있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결국은 다 들어간다. 이게 삶의 능력인지, 인간의 집착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물건들은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간다. 그 과정은 이사라기보다 다시 익숙해지는 연습 같았다. 집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다시 조립하는 일에 더 가까웠다.


손이 닿는 곳에 익숙한 물건을 배치한다. 침대보를 갈고, 이부자리를 정돈한다. 익숙한 식탁에 익숙한 식기를 꺼내 올린다. 디퓨저를 열어두자 오래 맡아온 냄새가 공간에 퍼진다. 그러면 갑자기 이곳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전압은 바뀌었고 집 구조도 달라졌지만, 내 감각은 내가 아는 방식으로 안착한다. 익숙함이라는 건 환경이 아니라 감각이 만들어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뉴욕의 공기가 조금은 같이 포장되어 온 탓일까, 반갑기도 했다. 그 도시에서의 시간과 소리와 습관들이, 이 박스들 사이에 눌려 있다가 다시 공기 중으로 풀리는 느낌. 그런데 또 이 물건들은 이제 여기의 공기를 머금고, 여기의 시간과 공간을 담아갈 것이다. 물건이란 원래 한 번 사면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물건이 놓이는 곳마다 새로 기록되는지도 모른다. 같은 컵으로 마시는 물인데, 도시가 바뀌면 맛이 달라진다.


하나 웃긴 건, 삼 개월 동안 같은 옷들만 돌려 입다가 새로 온 옷을 입으니 진짜 새 옷 입는 기분이 든다는 점이다. 옷 자체는 새것이 아닌데도, ‘오래 못 봤던 것’이 주는 새로움이 있다.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늘 옆에 있어서 소중함을 잘 모르던 것들, 당연해서 감사하지 못했던 것들이 잠시 사라졌다가 돌아오면, 그때서야 그 값이 보인다.


이제 이 집은 조금 더 집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이렇게 안착하는 데 익숙해질 즈음, 또 이사를 하게 되겠지. 그 다음 이사는 벌써부터 걱정되면서도, 묘하게 기대가 된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공간이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가구와 물건들이 더 숨 쉴 수 있는 곳. 동시에 또 알면서도 안다. 공간이 넓어지면 물건은 또 늘어난다는 것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빈 곳을 채우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그래도 지금은 이만하면 된다. 박스를 뜯고, 물건을 놓고, 익숙한 냄새를 퍼뜨리고, 낯선 도시 한가운데에서 낯선 익숙함을 만들어 내는 일. 이 모든 과정이 결국 내 삶을 다시 내 손으로 붙잡는 감각을 준다. 집은 처음부터 주어지는 게 아니라, 이렇게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임을. 그리고 그 만들어짐 속에서, 나는 오늘도 어딘가에 정착하는 연습을 한다. 잠시라도, 내가 사는 곳을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도록.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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