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의 무게를 다루는 법

어른이 된다는 말 대신 수정 가능한 사람이 되는 일

by 샤누자오사무

새해는 늘 그렇다. 날짜가 하나 넘어갔을 뿐인데, 마치 인생의 새 시즌이 열린 것처럼 굴러간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달라진 게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해마다 비슷한 생각을 한다. 이제는 내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좀 더 분명히 해야 한다고. 시간에 떠밀려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내 삶을 내가 어느 정도는 맡아야 하는 나이가 되는 것 같아서.


십 년 전의 나를 떠올리면 어지럽다. 이십 년 전은 더하다. 예전에 남겨둔 글과 사진을 다시 보면 얼굴이 빨개지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지나치게 단정적인 문장들, 근거 없는 확신, 남의 말을 내 생각처럼 얹어 둔 흔적들. 조금만 알고 다 아는 듯 말했던 기록. 지금의 내가 보기엔 어딘가 헐렁하고 위험하다. 그건 패기라기보다 불안이었다. 불안이 너무 커서, 문장을 단단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단단한 문장을 쓰면 마음도 단단해질 줄 알았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문장만 단단해지고, 사람은 더 쉽게 부러질 수 있다는 걸.


나이가 들수록 달라지는 게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내 말에 무게가 더해졌다. 회사에서는 회의 자리에서 던진 한마디가 누군가의 일을 늘리기도 하고, 집에서는 내 의견에 부모님이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어느새 좀 더 많이 살아본 사람처럼 취급받는다. 그 무게가 늘 좋은 방향으로만 쓰이지는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 그래서 조심하게 되고, 조심하다 보면 입을 닫아버리는 쪽이 더 쉬워질 때도 있다.


그렇다고 계속 나는 아직 어려, 아무것도 몰라라는 말 뒤에 숨을 수도 없다. 그 말을 하기에는 이미 꽤 많은 것을 봤고, 들었고, 겪었다. 정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면, 이제는 그 책임이 나에게 돌아온다. 나이가 든다는 건 완성된 어른이 되는 선언이 아니라, 내 말과 선택의 결과를 남 탓으로 돌리지 않겠다는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회피와 유예 대신,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선택부터 바라보는 것.


책임감이라는 단어도 예전과 다르게 들린다. 예전에는 책임이란 벌인 일을 끝까지 치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조금 다르다. 책임은 앞으로의 나를 위해 오늘의 나를 어떻게 쓰느냐에 가깝다. 실수를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실수를 다루는 태도다.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방향을 바꾸는 사람으로 남겠다는 다짐. 나이가 쌓인다는 건 결국 같은 후회를 같은 방식으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인지 모른다.


조심해야 할 것도 분명 있다. 세상을 오래 봤다는 이유로 냉소를 지혜로 착각하지 않는 것. 상처받지 않으려고 갑옷을 두껍게 두르다가, 결국 타인의 마음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 그렇다고 모든 걸 이해하고 품는 사람인 척할 필요도 없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균형을 잡는 일. 거창하지만 결국 매일의 문제다. 오늘 내가 건넨 말이 정답이었는지보다, 그 말이 누군가에게 어떤 방식으로 남는지 더 오래 생각하는 일.


새해가 올 때마다, 앞으로의 인생이 한 번도 힘들지 않은 완만한 길이 되리라는 기대는 이제 없다. 어느 해든 웃으면서 떠올릴 날과 떠올리기 싫은 날이 섞여 있을 것이다. 다만 나이가 든다는 건 그 섞여 있는 시간들을 조금 더 담담하게, 그리고 조금 더 책임 있게 통과하는 법을 배우는 일인 것 같다. 과거의 관성에 끌려 다니기보다, 앞으로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오늘의 기준을 다시 세워 보는 것.


언젠가 몇 년 뒤의 내가 이 글을 다시 읽고 얼굴을 찌푸릴지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심각하게 썼나, 왜 이렇게 다 아는 것처럼 말했나. 그래도 그때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이 정도일 것이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자기 삶을 자기 손으로 조금이라도 더 만들고 싶어 했던 사람이라고. 그 정도면, 나이 먹어 가는 사람으로서 나쁘지 않은 출발이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연말의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