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우리를 살린다

완벽한 일기 대신, 진행 중인 나를 남기는 법

by 샤누자오사무

요즘은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꼭 모든 걸 기록해야 할까.


많은 사람이 일기를 쓴다. 하루를 정리하고, 감정을 되짚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 분명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런데 어떤 날은, 종이를 펼치는 순간부터 마음이 더 무거워질 때도 있다. 이미 한 번 겪고 끝난 일을 글로 다시 꺼내 놓는 동안, 상처의 결만 더 선명해질 때가 있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다 보면 정리는커녕, 처음보다 더 깊이 가라앉는 날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정리하게 됐다. 모든 감정과 사건을 글로 붙잡아 둘 필요는 없다고. 특히 이미 충분히 아팠던 일이라면, 굳이 다시 새겨 넣지 않아도 된다고. 좋은 기억을 두 번 세 번 떠올리며 혼자 웃는 것 정도면, 곱씹음은 그걸로 충분하다는 마음이 생겼다. 기쁨은 반복할수록 부드러워지지만, 상처는 반복할수록 날카로워지는 순간이 있으니까.


기록에 대한 이 생각은 자연스럽게 창작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비슷한 유혹이 있다. 조금만 더 고쳐 보고, 조금만 더 다듬어 보고, 완벽해지면 그때 내놓겠다는 마음. 그러다 몇 달, 몇 년이 흐르고, 작품은 점점 지금의 나와 어긋나기 시작한다.


우리가 만드는 것은 나를 완전히 증명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때의 나를 비추는 한 장의 사진에 가깝다.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오늘의 언어와 손놀림이 닿는 만큼. 그 조각을 세상에 내보낸다고 해서, 그것이 내 전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두면, 조금 덜 두렵다. 완벽하지 않아도, 지금의 나를 보여주는 데에는 충분하니까.


작품에는 시기가 있다. 제때 내보내지 못한 글과 그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다루기 어려운 짐이 된다. 이미 나는 다른 곳으로 건너갔는데, 오래된 초고는 계속 그 자리에 남아 나를 잡아당긴다. 몇 년째 같은 문장을 붙잡고 있는 건, 해마다 같은 날짜의 일기를 새로 쓰는 일과 비슷하다. 그 사이에 흘러간 계절과 마음은 기록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 다음 문장에 숨이 들어갈 자리가 줄어든다.


그래서 어떤 작품은, 더 고민하기 전에 밖으로 내보내는 편이 낫다. 이 정도면 지금의 나를 충분히 담았다고 인정해 주고, 나머지는 세상의 몫으로 남겨 두는 것. 누군가 좋아해 줄 수도 있고,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결과와 상관없이, 한 번 밖으로 내놓아야 다음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록도 마찬가지다. 매일을 치열하게 남길 필요는 없다. 어떤 날은 말 대신 잠으로 회복하는 편이 낫고, 어떤 날은 글 대신 가까운 사람에게 허술한 마음을 직접 건네는 편이 낫다. 기록이 나를 정리해 줄 때는 고마운 도구지만, 기록 때문에 현재를 충분히 살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면, 잠깐 내려놓아도 괜찮다.


완벽하게 정리된 나를 남기겠다는 욕심보다, 진행 중인 나를 조금씩 드러내겠다는 각오가 더 마음이 편하다. 다 정리된 다음에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때, 오히려 삶은 덜 막히고 자연스럽게 흐른다. 아직 미완성이라도,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작은 조각으로 남기는 것. 어쩌면 그 정도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은 어차피 마지막까지, 정답 대신 진행 중이라는 이름으로 끝까지 이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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