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의 얼굴

'성공하는 법' 이라는 교본, 자선단체와 규칙의 정치, 공과 사의 뒤섞임

by 샤누자오사무

일요일 밤, 사내 채팅방에 알림이 떴다. CEO의 부인이자 경력조차 부족한 CCO가 올린 공지였다. 제목은 거창하면서도 강렬했다. 성공하는 법. 내용을 열어 보니 복장 규정, 미팅 태도, 상사에게 잘 보이는 법, 출퇴근 시간 관리까지 일종의 ‘사내 성공 매뉴얼’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얼핏 보면 신입 직원들을 위한 조언 같지만, 실제로는 순응과 과잉 충성을 강요하는 지침에 가까웠다. 더 기묘한 건 이런 메시지가 CEO와 그 배우자라는 ‘가족 경영진’의 손에서 직접 흘러나온다는 점이었다. 휴가 때조차 EA를 동반해 베이비시팅을 시키고, 그 비용을 회사 경비로 처리하는 이들. 이미 공과 사의 경계는 오래전에 무너진 상태였다.


매뉴얼의 내용은 구체적이고 촘촘했다. 회의실에선 등을 곧게 세우고 바른 자세로 앉을 것, 메모는 반드시 노트에 손으로 남길 것, 옷차림은 언제든 임원 미팅에 불려가도 될 만큼 단정할 것, 퇴근은 주변 사람들보다 늦을 것. 점심 자리에서는 팀원이 아닌 다른 사람 옆에 앉아 네트워킹을 하라는 지침까지 있었다. 심지어 복도에서 마주친 동료에게 먼저 인사하라는 항목도 있었다. 직장 예절처럼 보이는 이 문장들은 결국 회사가 원하는 단일한 ‘모범 배우’의 이미지를 강제로 주입하는 장치였다.


냉정하게 보면 이는 성과나 실력과는 무관했다. 앉은 자세와 웃는 얼굴로 성공을 보장한다는 건 일종의 연극이었다. 조직이 원하는 건 독립적인 사고나 비판적 시선이 아니라, 잘 길들여지고 자기 표현을 억누르는 존재였다. 결국 이런 지침은 모순을 드러냈다. 업무 개선이나 전문성 강화는 뒷전이고, 직원들이 얼마나 ‘좋은 배우’처럼 움직일 수 있는지가 평가 기준이 되는 곳. 활기차고 세련된 문화를 표방하지만 내부는 불신과 통제로 가득했다.


실제 운영도 그랬다. 재택근무 주간을 폐지하고, 금요일을 강제로 재택일로 지정했다가 곧 무너지는 규칙들. 자율을 이야기하면서 사소한 행동까지 감시하려 드는 태도. 그것도 CEO와 배우자, 그리고 가까운 측근을 통해 흘러나왔다. 회사 운영은 이미 가족과 친구의 손에 의해 사유화된 지 오래였다.


AI 찬양의 목소리가 잠시 잦아들자, 그들은 새로운 비전을 내놓았다. 바로 내부 자선단체 설립. 남을 돕는다는 그럴듯한 명분 뒤에는 불투명한 운영 구조와 알 수 없는 자금 사용처가 있었다. 임명자는 알리진 않았지만 이미 정해져 있었고, 절세의 이름으로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뒤섞였다. 상장을 꿈꾸는 회사가 이런 구조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은 희극 같으면서도 비극에 가까웠다.


공과 사의 뒤섞임은 더 노골적이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CEO의 절친이자 지금은 은퇴한 고위 간부의 아들이 인턴 자리를 차지했다. 공석인지도 몰랐던, 사실은 그를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고, 그 인턴은 곧바로 CFO와 이사회 보고 자료를 정리하는 중책을 맡았다. 회사 간부들은 오냐오냐를 넘어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했고, 인턴 발표 행사에도 모두 참석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 선봉에는 내 매니저가 앞장섰다. 그렇게도 오피스 출근의 가치를 강조하더니, 정작 그 인턴은 예정에도 없던 파트타임으로 돈을 받으며 유럽에서 인턴십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 생각한다. 회사란 결국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교본대로 움직이는 연극이 강요된다. 직원은 배우로 전락하고, 회사는 무대가 된다. 화려한 장면은 고객 앞에서만 연출되고, 무대 뒤편에는 권태와 불신, 회피와 이탈만이 쌓인다. 직원들이 조용히 떠나는 이유도 그 안에 있다.


결국 이 회사가 원하는 건 단순하다. 성과가 아니라 충성, 자율이 아니라 순응. 하지만 사람은 매뉴얼로 움직이지 않는다. 때로는 바른 자세로 앉는 것보다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더 가치 있다. 그러나 이곳은 그런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말없이 등을 돌리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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