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간단함'을 설명하기 위해 내 신용을 깎아 쓰는 일
어드바이저와 통화를 시작한 건 매니저의 요구 때문이었다. 몇 단계의 분석이 필요한 사안이었는데 그는 첫 단어에만 집착했다. “아주 간단한 일”이라며 다그쳤다. 문제는 그가 말하는 그 ‘간단함’이 전체 구조가 맞물려 돌아가야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보고서에 이미 다 적혀 있는 내용, 합의된 논리가 있었음에도 그는 듣지 않았다. 대화와 무관한 도표를 꺼내 보여주며 “한 번에 한 가지만”이라는 말로 모든 걸 포장했다. 그러나 그 한 가지가 성립하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전제가 먼저 충족돼야 했다. 나는 그 사실을 어드바이저에게 설명하고, 다시 매니저에게 옮기고, 또다시 정리해 되돌려 받는다. 알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고, 듣지 않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정작 귀 기울이는 역할은 오로지 나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늘 내 신용을 깎아 쓴다.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묻고, 이미 정리된 결론을 다시 부탁하며, 모르는 척을 연기한다. 그래야 설명을 오래 얻고, 그래야 쉽게 다듬어진 문장을 들고 그 앞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내가 대신 부족한 사람 역할을 해야 일이 굴러간다. 그는 어드바이저의 말까지 내가 가공해 전달하길 원한다. 질문과 답 사이, 판단과 책임 사이, 그 좁은 다리를 건너는 일은 늘 내 몫이다. 회의가 끝나면 욕받이, 감정받이, 시간을 태운 불쏘시개가 된 내가 남는다. 머리는 멍하고, 숨은 짧아지고, 정작 내 본래 일을 할 기력은 없다.
어드바이저와의 대화는 원래 배우는 자리였다. 더 넓은 시야를 얻고, 더 깊은 이해를 쌓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언어를 흉내 내는 연습장이 되었다. 나는 내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그의 질문을 빌려 말한다. 내 어휘는 단단해지기는커녕 깎여 나간다. 필요한 단어가 눈앞에 맴돌다 흩어지고, 남는 건 설명되지 않는 무기력뿐이다. 그의 무지는 결국 내 신뢰를 갉아먹고, 내 시간을 소모품으로 만든다. 일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소진되는 날의 끝은 늘 같다. 떠나고 싶은 마음과 버텨야 한다는 책임감이 동시에 가슴을 당긴다.
이런 악순환은 퇴사를 앞둔 순간에도 이어졌다. 억지로 잡힌 두 시간 남짓의 transition 미팅, 처음부터 기운이 빠졌다. 내가 미리 만들어둔 문서는 어렵다며 읽지 않았고, 그는 또 다른 트래커를 요구했다. 애써 만들어도 아무도 그 일을 맡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더러워도 해야지 싶었다. 하지만 그 자리는 후임을 정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저 본인이 책임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 무대에 불과했다.
그의 입에서는 늘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나는 이건 잘 몰라.” “한번 다시 돌아가 보자.” “같은 이해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자.” 이해하지 못하는 건 본인뿐인데, 그 무지를 장황한 말로 덮는다. 40년 가까운 경력을 가진 사람이라면서, 가장 기본적인 이해조차 하지 못한 채 회사의 돈을 만지고 중역의 자리에 버티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의문조차 낭비 같아 개의치 않게 되었다.
내가 맡았던 일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었다. 상장을 준비하는 회사의 internal control, 서류마다 그의 이름이 올라가야 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책임질 생각이 없었다. 일을 떠넘기고, 선택권도 의견도 주지 않았다. 정밀함과 디테일이 생명인 자리에서 “중요하지 않으니 대충 넘어가자”는 태도만 반복됐다. 애써 포장하면 큰 그림을 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아무에게도 제대로 된 가이드 한 줄 못 주는 무능일 뿐이었다. 팀원들 대부분이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고, 하나같이 불만을 토로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배우는지도 모르고, 앞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도 감이 오지 않는 자리. 그 속에서 흘려보낸 시간들.
미팅은 그렇게 끝났다. 그는 마지막까지 말했다. “내 이름은 올리지 말자.” 아무도 맡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임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다른 미팅을 열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 내 이름은, 이제 더는 남기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