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에 태어난 나는 학창 시절에 '티끌모아 태산이다, 아껴야 잘 산다'를 돈 관리의 기본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지금은 욜로(YOLO), 가심비, 가잼비, 티끌모아 티끌이란다.
돈을 향한 관점이 달라졌다.
2007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무한대로 성장할 것 같던 경제발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중산층 붕괴, 빈부격차 확대, 청년 실업, 부동산 급등처럼 실제 체감할 수 있는 경제 이슈가 일상이 됐다. 경제는 좋아질 것 같지도 그렇다고 나빠질 것 같지도 않은 상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이를 기대 감소의 시대라고 칭했다. 자수성가, 개천에서 용 난다를 주변에서 본 적이 있는가? 이제 사람들은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한 돈으로 결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작은 아파트에서 사는 일이 얼마나 꿈같은 일이면 삼포세대가 등장했고 이제는 N포 세대까지 포기의 범위도 늘어났다.
이러한 기대 감소 시대에 태어나 경제활동을 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지금, 당장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현재에 초점을 둔다. 당장의 수익을 중시하면서도 심리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요소에는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상반된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MZ세대가 미래가치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발표자료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의 21.3%가 고위험 상품에 투자경험이 있다고 한다. 투자를 하되 흔할 말로 단기간에 한방을 노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P2P 투자, 주식을 포함한 선물·옵션 비대면 거래 확장, 가상화폐 등 기존에 없던 투자처가 등장한 것도 한몫했다.
베이미 부머와 X세대가 쌓아두는 행복에 집중했다면 밀레니얼과 Z세대는 소비하는 행복으로 돈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다. 먼 미래보다는 근미래를 위해, 그리고 유형보다는 무형의 가치에, 비슷한 이유로 돈을 모으던 것에서 개성에 따라 다양한 이유로, 훗날을 위한 계획적 소비에서 즐거움을 위한 즉흥적 소비 태도를 보인다. 더 잘 누리기 위해 본인의 투자, 소비태도에 대한 명확한 진단을 받기를 원한다.
MZ세대는 실제로 자산관리가 필요하다. 어떤 학자는 2030년까지 현 부유층 보유자산 중 약 68조가 이전되는 세대가 밀레니얼이 될 것이라 예측한다. 게다가 역사상 가장 부유한 세대가 밀레니얼 세대라는 주장도 있다. 예전에는 자산관리 서비스의 메인 타깃이 아니던 여성 부유층이나 어린 예비 상속자가 자산관리를 요구한다.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자산관리가 대중화됐다. 금융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좋아졌고 비대면(Untact) 금융서비스 이용에 대한 친숙도가 높아졌다. 전통적인 가계부 서비스부터 오픈뱅킹과 마이데이터 정책으로 스크래핑할 수 있게 되면서 통합자산조회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시장에 나와있는 MZ세대를 위한 수많은 자산관리 서비스는 자산현황, 거래 이력 등의 정형화된 데이터를 중심으로 고객을 관리한다. 대부분 이런 루틴이다.
- 월급을 탔다
- 소비가 많았다(예를 들면 커피값 지출이 많았다)
- 가입한 적금 만기가 도래했다
- 같은 연령, 자산규모를 가진 사람에 비해 자산이 불균형하다
- 현금을 지원해 줄 테니 카드를 갈아타라
- 증권계좌를 열어라
- 펀드를 추천한다
대부분 자산 현황 확인→관리 및 피드백 → 자산 증식 계획 제안으로 서비스가 제공된다.
The Joy of Life, 인생의 즐거움을 위한 자산관리를 원하는 MZ세대에게 시중의 서비스는 자산현황에 대한 1차원적 진단을 내린다. 게다가 여전히 아끼고 모으고 금융상품을 가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자산관리의 목적이 목돈마련을 위한 상품 가입, 지출 줄이기, 증권계좌 쉽게 만들기는 아니다. 이는 관리를 위한 수단이다. 고객의 자산을 잘 관리하려면 우리 상품을 가입해야만 해라는 공급자적 마인드가 이런 서비스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시중의 자산관리 서비스의 아쉬운 점은 사용자가 무엇을 위해 자산관리가 필요한지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20대엔 목돈을 모으고 30대에는 결혼자금을 준비하게 하고 40대에는 교육자금을 50대 이후에는 은퇴자금을 모으라고 조언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조언이 개인화 서비스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용자는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 각기 다른 챌린지를 맞이한다. 빨리 돈을 모으고 싼 이율의 대출을 받아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보다 해마다 주기적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것을 원할 수도 있다. 같은 자산을 가지고 있다고 같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같은 사용자는 한 명도 없는 것처럼. 일반적인 인구통계학 정보와 자산현황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면 케어가 아닌 친절한 알림에 멈출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서비스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면 유니크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진 채로 서비스만 존재하게 된다.
자산관리는 더 이상 은행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보수적이고 중앙집권적이었던 금융 산업 구조가 파괴되고 있고 사용자는 일상 속에서 플랫폼의 경계 없이 자연스럽게 금융 데이터를 탐색할 수 있다. 당연히 자산에 대한 현황 파악과 조언도 은행에서 구하지 않아도 된다. 빅 테크 플랫폼은 나의 자산현황뿐 아니라 일상 속 개인의 독특한 데이터를 수집해 자산 정보와 믹싱해 제공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채널은 사용자가 모르는 사이에 사용자가 원하는 유니크한 니즈를 파악하고 어떻게 자산관리를 해야 되는지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조언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자산관리가 다이어트라고 생각한다. 몸무게를 줄이는 것만 목표가 아니라 건강한 삶을 위한 신체적 균형을 맞추는 일인 것처럼. 실제로 다이어트의 영문 뜻이 그러하기도 하다. 식이요법에 가깝지 살 빼기가 아니다. 살만 빼는 다이어트라고 해도 같은 감량 목표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산관리 서비스의 접근 방식이 다이어트를 하는 과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제 비대면 자산관리 서비스 버전 1은 종료됐다. 다음 버전의 자산관리 서비스는 개개인의 성향, 행동 패턴, 감성 분석에 기반한 맞춤형 상품과 서비스가 돼야 한다. 아끼고 모으는 것만큼 어떻게 잘 쓰고 누리게 할지, 건강한 자산운용을 위해 개인 별로 어떻게 균형을 맞춰줄 것인지가 사용자 경험 설계의 핵심이 될 것이다.
참고
1) 책 : 폴 크루그먼 기대 감소의 시대
2) Top Trends in Wealth Management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