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중국은 금융인프라와 금융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플랫폼 기업이 금융업 라이선스를 획득하며 직접 금융업에 진출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기술이 금융서비스를 이끄는 대표 사례가 알리바바의 알리페이라고 볼 수 있다. 알리페이는 계산 시 돈을 계산대에 놓거나 위폐 확인 절차가 있던 중국의 지불 문화를 단숨에 바꿨다. 계산대 체류시간을 극단적으로 감소시키는 알리페이와 위챗 페이는 실제로 지불결제의 90%이상을 담당하게 됐다. 이렇듯 IT 공룡기업이 만들어 낸 서비스 하나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중국의 결제 문화를 바꿨다.
하지만 국내 플랫폼은 금융업에 직접 뛰어들기보다는 금융회사의 상품을 판매하는 채널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국내 한 시중은행은 수신상품의 판매량이 내부채널과 외부 플랫폼이 비슷한 수준까지 이르렀다. 국내 대표 플랫폼인 카카오나 네이버도 간편 결제와 송금 서비스으로 시작해 예·적금, 대출, 펀드, 보험 서비스 등의 상품 판매 역할로 서비스를 확장해 나간다.
국내의 경우 플랫폼을 통해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행위에 규제가 있기 때문에 실제 사용자는 금융상품을 가진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구조다. 따라서 국내 대형 플랫폼은 금융상품의 판매를 대리하거나 홍보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플랫폼 기업은 이용자의 편의성을 높여 이용자를 붙잡기 위한 목적(Lock-in)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
실제로 전통금융회사의 역할이던 결제나 포인트 서비스 등은 이미 상용화되었고 이용률은 급증하고 있다. 얼마 전 론칭한 네이버 통장의 경우 은행이 아니라 플랫폼회사에서 제공하는 계좌 기반 서비스다. 네이버에서 발생되는 결제를 이 통장으로 이용할 경우 포인트 혜택을 준다. 또한 증권사와 연결한 CMA통장을 통해 고객에게 매일 높은 금리의 이자를 제공할 수 있다고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원금보장이 되지 않는 통장 임에도 불구하고 생활 밀착형 결제에 대한 혜택을 누리는 고객을 락인하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플랫폼이 금융회사 다른 점은 사용자의 라이프사이클과 관련한 데이터를 파악하면서 고객의 금융 행태 뿐이 아니라 스토리를 수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제 시점의 데이터만 수집하던 것에서 결제 전후에 대한 사용자 태도와 피드백을 수집하게 되면서 플랫폼은 진정으로 고객을 이해할 수 있다. 어느 시점에 사용자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안내하고 자연스럽게 이끌기도 하고 순식간에 계산을 완료시키기도한다. 스티브 잡스는 '고객은 우리가 무언가 보여주기 전에는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고객이 무지(無知)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서비스와 의사결정의 복잡 다난함 속에서 먼저 고객의 니즈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표현한 것이 아닐까?
알리페이 내 미니앱은 사용자에게 필요한 알림과 도움말을 선도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개개인 마다 다른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 추천서비스와 할인쿠폰 등을 제공한다. 단순한 페이서비스가 아니라 사용자가 어떤 시간에 어떤 매장을 가는지, 선호하는 브랜드와 제품은 무엇인지 모두 알고 있다. 금융서비스는 플랫폼에서 도구로 활용 될 뿐 고객의 일상의 스토리를 읽어 낸다. 그래서 고객은 내 스토리를 잘 알고 있는 알리페이에서 타오바오의 상품구매, 송금, 음식배달, 공공요금 납부, 택배, 항공권 예매, 법칙금 납부 등 생활 속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한다.
특히 우리의 메인타깃이 될 밀레니얼 세대는 전통 은행의 디지털 뱅킹에 대한 만족도가 50% 수준인 것에 반해 IT기업이 제공하는 금융상품 이용에 대해서는 74%가 호의적 태도를 보인다. IT기업의 서비스는 금융 거래 내역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여정과 취향이 반영된 개인의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 수집과 빅데이터 분석력을 중심으로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구글은 당좌예금 계좌 서비스(수표 발행이 가능한 예금)를 론칭한다고 발표했다. 구글은 이미 개인의 연락처, 주소 뿐 아니라 지도와 내비게이션을 활용한 이동 정보, 월급과 소비 패턴과 같은 재무정보까지 보유하고 있다. 소비습관을 중심으로 한 IT기업의 페이 서비스를 넘어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한 금융 서비스를 준비하는 것이다. 여기에 헬스케어 기업인 어센던트와의 파트너십으로 건강정보와 금융정보를 엮어 전방위적으로 고객을 케어하고자 한다.
이미 플랫폼이 금융 서비스를 시도한 케이스와 성공사례는 넘쳐난다. 다만 앞으로 나올 IT기업들의 금융 서비스는 고객을 이해하는 스토리를 기반으로 차원이 다른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고객은 더 이상 어떤 은행의 계좌보다는 어떤 플랫폼과 어떤 디지털 서비스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역으로 삶에 영향을 받을지도 모른다. IT기업이 중국의 고질적인 결제 문화를 반전시킨 것처럼.
얼마전 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계좌번호를 외우기도 했고 공인인증서의 비밀번호를 찾느라 애썼다. 인증서 유효기간이라도 지나면 당장 은행에 뛰어가야 했다. 간편 송금이 등장한 지 겨우 몇 해다. 이 작은 변화는 이제 정책적 지원, 기술과 데이터를 만나 고객의 스토리를 이해하는 서비스의 등장을 이끌게 됐다.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조건 아래 고객이 피로할 만한 정보를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고객의 거래 내역이 아니라 개개인이 가진 삶의 이야기를 이해한 서비스를 디자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