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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희 Sep 27. 2022

감수성의 개발

"인간은 모두 다 똑같다.

이 얼마나 비굴한 말인가요? 남을 업신여기는 동시에 자신마저 업신여기고, 아무런 자부심도 없이 모든 노력을 포기하게 만드는 말. 마르크시즘은 노동하는 자의 우위를 주장합니다. '다 똑같다.'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존엄을 주장합니다. '다 똑같다.'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오직 유곽의 호객꾼만 그렇게 말합니다. "헤헤헤, 아무리 잘난 척해 봤자, 똑같은 인간 아닌가?"

어째서 똑같다고 하는가. '월등히 낫다.'라고 말하지 못하는가. 노예근성의 복수.

하지만 이 말은 참으로 외설스럽고 불쾌해, 사람들이 서로 겁먹고 모든 사상이 능욕당하고 노력이 조소당하고 행복이 부정되고 미모가 더럽혀지고 영광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소위 '세기의 불안'은 이 신기한 한마디에서 나왔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사양 #다자이오사무 p.149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몇개의 기준이 있다면 인간과 인간을 가름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의 촉발.


사회에 속한 이상 누군가의 취향이라던가, 윤리의식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어느 정도는 사회에 의해 생산되었다고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개인이라는 단어 역시 그 가능성을 내포한다. 누구든 까보면 죄다 사회적인 관습의 집합이라고. 그럼에도 똑같은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저마다의 감상이 다른데 그것이 감수성이다. 


한 사람을 파악할 때 어떤 자극에 기민하게 감응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감수성이란 어디에서 어디까지 사유할 수 있는지, 인지 능력의 예민함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로 작용한다. 저녁 먹으면서 볼 유튜브 영상을 고르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인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만연한 차별과 연대에 마음을 쓰는 이들이 있다. 어느 쪽이 삶의 고양감, 그리고 감사와 사랑을 더 빈번히 느낄지는 자명하다. 


무덤덤해지는 것은 위험하다. 동요가 없다는 것은 때론 성인의 징표로 여겨지지만 어쩌면 세계의 자극에 대한 무감각의 발로다. 나는 의식적으로 감수성을 개발하는 것이 ‘똑같은 사람들’이 구분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확고한취향, 어떤고통이나사유에대한섬세한감각을가지고있는사람들을멋지다고생각한다. 적어도자신이다른사람들과다르다는것을인식하고삶에대한적절한통제감을발휘하는듯하다. 선민의식으로뻣어간다면멋이존나게없겠지만. 

단상.


2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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