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내게 역설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고 내가 아주 좋아하기도, 또 아주 싫어하기도 하는 말이다. 회자정리의 시간은 늘 마음이 아린다.
대학에 들어와 가장 좋아하던 분식집이 이번 달에 문을 닫는다.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쳐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따뜻하고 깊게 통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이 푸른집,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가 후자에 속한다. 딱히 대단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다니는 학교, 내가 묵고 있는 자취방의 근처에 있는 작은 분식집이고,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인상이 좋으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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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의 외관은 음식점이라기 보단 차라리 철물점의 모양새에 가깝다. 내부는 넉넉잡아도 열 명만 앉더라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좁다. 메뉴는 각종 김밥, 라면, 튀김이 있고 떡볶이와 순대가 이곳이 명실상부한 분식집임을 상기시킨다. 가격은 다소 합리적이나 맛이 아주 일품인 것은 아니고 인테리어가 아주 멋진 것도 아니다. 다만 음식은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닌 것이 자명하기에 내게는 이곳이 깨나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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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나고 목포에서 자란 촌놈인 스물의 나는 연고 하나 없는 서울 바닥에 던져졌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부모의 품이 얼마나 깊고 아늑한지도 모르던 당시의 철부지는 홀로서기의 두려움보단 혼자가 됐다는 설렘이 더 컸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철부지는 인생그래프의 큰 변곡점을 맞이했고, 너덜너덜해졌다. 그래도 인간은 밥을 먹어야 한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건 나라는 인간이고.나는 푸른집에서 김밥 한 줄과 떡볶이, 튀김을 함께 시켜 양념에 범벅 해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 때 함께 나오는 따뜻한 어묵국물 맛이 아주 그만이다. 그 날도 오늘처럼 가을이 깊어지며 추워지던 무렵이었다. ‘날이 이제 제법 춥네요.’ 김이 모락거리는 어묵국물을 내어주시며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어떤 따뜻한 말이 주는 위로는 여기저기 부딪히며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며 비틀거리다가 문득 누군가가 불쑥 던진 말이 와 닿을 때, 그 때 가장 강렬하다. 위로는 멘트보단 타이밍, 시의적절(時宜適切)이 생명이다. 인사치레였을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나에겐 뜨끈한 어묵국물 만큼이나 따뜻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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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별난 기억력이 당시를 미화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이후로도 나는 종종 푸른집에 들러 김밥과 떡볶이, 튀김을 비벼먹었다. 어떤 날은 떡볶이 국물이 졸아 꾸덕한 맛이 나기도 했고 어떤 날은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가 유달리 매콤하기도 했다. 맛이 늘 일정하지 않았지만 나는 도리어 그것이 좋았다. 나는 백종원식 ‘두 큰술’ 레시피보다 어르신들의 ‘적당히’ 레시피를 더 좋아한다. 좀 더 인간미 넘치지 않는가. 좀 더 엄마의 맛답잖은가.
오늘 떡볶이를 먹다 소식을 듣고는 정말 울컥했다. 저는 이제 어디서 떡볶이를 먹어야 하나요- 하고 장난 반 어리광 반 농담을 던져보아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간 느낀 따뜻함과 고마움에 음료 두 잔을 사다드렸다. 오히려 당신이 사주셔야 한다며 한 번 팔짝 뛰셨고,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아- 정 많은 분 같으니라고.매콤한 떡볶이, 따끈한 국물, 따뜻한 말 한마디의 맛을 잊지 않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2019.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