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화가, 고흐

봄날의 아몬드를 좋아하시나요?

by 언어미식가

나는 아몬드를 좋아한다.

나뭇결을 닮은 몸통도,

단단한 아몬드를 이로 오도독 깨물면

쩍 하고 갈라지는 그 느낌도 좋다.

입 안 가득 퍼지는 고소함 때문에

아몬드를 즐겨 먹곤 한다.


아몬드를 좋아한다면서도,

그것이 열매인지 씨앗인지,

밭에서 나는지 나무에서 열리는지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모니터 속 한 폭의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 아몬드는 나무에서 열리는구나.’

그다음에는 ‘아몬드 꽃’이라는 단어가

너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으로 중얼중얼 외워 보기도 하고,

연필로 꾹꾹 눌러써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몬드 꽃향기가 궁금해졌고,

꽃을 입안에 한 움큼 넣고 씹어 본다면

아몬드처럼 오도독 씹히려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이 그림을 그린 사람.

빈센트 반 고흐가 궁금해졌다.


그의 작품을 둘러보다 보니

‘아몬드 꽃나무’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내가 좋아하는 아몬드가 자주 보이자,

그와 내가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지난밤, 위인전 읽듯이 훑어보던 그의 생애가 아니라, 아몬드를 좋아하는 나의 친구로서

그의 삶에 관심이 생긴 것이다.


고흐와 나의 공통점은 또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었다.


그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당시 최하층민이 살던 탄광촌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뒹굴며 살았다는 이야기는 처음 알게 되었다.

내 기억 속의 고흐는 천재적인 감각을 지닌 화가이자, 정신질환을 앓다 결국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인물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증거 하며 살기를 원했던 그는

왜 고독과 우울, 절망으로 얼룩진 삶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을까.


“자연은 위대하고 고귀하고 진실하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평온과 인내를 잃지 말고 힘써 일해야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말이다.

그는 자연을 사랑했다.

『꽃 핀 아몬드 나무』를 보며

나는 그의 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얼마나 따뜻한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얼마나 사랑스러워했는지를.


고흐는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는 왜 그렇게 자연을 사랑했을까. 혹시 자유의지가 아니라, 선택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연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고흐는 사랑에서도 여러 번 실패했고,

가족들과의 갈등도 끊이지 않았다.

불같은 성격 탓에 우정은 오래가지 못했고,

그를 이해하고 받아줄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붙잡고 있던

종교라는 동아줄마저 끊어지고 말았다.


그의 광신도적인 기질과 격정적인 성격 때문에

교회에서는 전도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아버지의 반대도 있었다고 한다.

화가로서의 고흐를 이야기할 때

이 경력은 중요하지 않은 부분일지 모르지만,

친구인 나로서는 이 대목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고흐의 또 다른 작품,

『아몬드 꽃가지』를 떠올려 본다.


『꽃 핀 아몬드 나무』가 봄과 생명을 노래한다면,

이 그림은 겨울과 죽음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림 속의 꽃가지는 아몬드 나무에서 꺾여

유리잔에 홀로 담겨 있다.

나무에서 분리된 채, 혼자만의 세상을 이루고 있다.

더 이상 같은 뿌리에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고,

같은 시기에 꽃이 피고 질 수도 없다.

이제는 더 이상 ‘함께’라고 말할 수 없는 상태다.


나는 생각했다..

그 꽃가지는

고흐가 직접 꺾었을까?

떨어져 있는 것을 소중히 주워왔을까?


세상과의 갈등과 불신에 지친 그는

단절을 선언하면서도,

그 이면에서 외로움과 고독을

홀로 견뎌내고 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고흐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세상과의 단절을 원했냐고.


유리잔에 담긴 물을 바라본다.

꽃가지는 죽은 듯 보였지만 살아 있었고,

꽃은 피어 있었다.

고흐는 이 잔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감히 상상해 보자면,

그는 마음속으로 더 힘차게 물을 흡수하라고,

조금 더 활짝 피라고 응원하고 있지 않았을까.

잔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함께 바라보면서.


그림 속 잔에는 물이 반을 조금 넘게 담겨 있다.

하나의 나뭇가지에게는 다소 과분해 보일 만큼.

나는 이것이 고흐 자신의 목마름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는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사랑’에 대한 갈증을.


지금은 천재 화가로 기억되고,

그의 죽음마저 하나의 예술처럼 소비되지만,

당시 그는 미치광이 혹은 포악한 정신이상자로

기피의 대상이었다.

그는 진정한 사랑의 갈증을 채우지 못한 채

메마르고 시들어갔다.

바로 곁에 폭포수처럼 흐르는

영원한 생명수가 있었음에도 말이다.


고흐는 이런 말도 남겼다.

“우리는 별에 다다르기 위해 죽는다.”


죽음조차 자연을 향한 과정이라 말하는 이 남자, 고흐. 그는 하나님이 처음 지으신 가장 순수한 모습—자연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만약 시간을 돌려

고흐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기 전으로 갈 수 있다면,

나는 그의 손에 권총 대신 아몬드를 쥐여주고 싶다.


그리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

꽃잎이 흐드러진 아몬드 꽃나무 아래에 함께 앉아

아몬드를 나누어 먹으며 말해주고 싶다.


네 책상 위의 아몬드 꽃은

아직 시들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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