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통방통하지 않아도 괜찮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의 삶이 좋았다.
오롯이 나로만 존재해도 되는 삶.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그저 흘러가는 사고와 사색 속으로
더 깊이 나 자신에게 파고드는
그 고요하고 정적인 시간이 좋았다.
이대로 유유히 살아도 될 것 같은 만족감과,
그래도 태어나 세상에
유의미한 발자국 하나쯤은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마음이
늘 나를 둘로 나누었다.
물안개 자욱한 새벽녘,
누워 있던 용이 몸을 일으켜
날아오를 준비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허허.
그는 그이고 나는 나일뿐인데,
사람들은 자꾸 우리를 나란히 세워
무언의 기대를 얹는다.
나는 나만의 리듬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숙이라는 자가 나에게 찾아와 지혜를 구한다.
이미 세상 판을 읽고 움직이는 자였다.
그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있었다.
나는 나의 생각을 내어주었고,
그는 유비를 찾아가 보라며 추천서를 건넸다.
유비.
사람을 귀하게 여기기로 이름난 군주.
인재를 얻기 위해 세 번이나 초가집을 찾았다는 사람.
그는 봉추인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세상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용과 나란히 놓인 새라며.
추천서는 잠시 접어두었다.
그의 안목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와룡과 봉추를 모두 품을 수 있는 인물인지.
추천장 없이 다가선 나를 향한 그의 눈빛은
담담했다.
기대했던 의미는 읽히지 않았다.
사람을 귀히 여기되,
깊이까지 들여다보는 사람은 아니구나.
그럼에도 나는 세상으로 나가기로 했다.
세상의 방식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봉추를 위한 환영은 조용했고,
나는 혼자 축배를 들었다.
쓰디쓴 맛이었다.
베일을 벗던 날,
그들의 표정은 변했다.
경외와 사과, 놀라움이 한데 뒤섞였다.
그저 관계를 새로 정의하는 시간일 뿐이었다.
나는 다시 확신했다.
세상은 증명 없이 믿지 않는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그래서 나는 연마했다.
스스로를 더 단단히 벼렸다.
고요를 깨고 나온 이후,
판을 짜고 뒤집고 설계하며
끊임없이 설명하고, 또 증명했다.
호흡은 가빠졌지만
빠르게 뛰는 심장은 싫지 않았다.
나는 살아 있음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큰 전투를 앞두고
말이 말썽을 부렸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된다 했다.
그러나 물러나는 선택은
나 자신이 용납하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말을 내어주는 유비를 보며
나는 또 한 번 느꼈다.
아, 나는 귀하게 여겨지고 있구나.
그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를 인정하고 있었다.
이곳이 낙봉파,
봉황이 떨어진다는 이름을 가진 비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화살은 이미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순간,
설명해야 했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증명하려 애쓰던 시간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나는 깨달았다.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나를 어떻게 정의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렇게 봉황은,
화살을 맞고 비탈 아래로 사라졌다.
방통은
끝까지 증명하려 애썼지만,
마지막에는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이 아닌
스스로에게 충분한 사람.
낙봉파에서 그는
그렇게 자신을 정의했을 것이다.
방통의 삶은
세상에 인정받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듬어온 시간의 궤적이었다.
방통은 끝내
방통으로 살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