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고삐를 놓던 밤

지혜와 덕이 쌓인 초목에서 마주하기

by 언어미식가

나는 존재할 수 없는 세계를 겪었다.

그러므로 존재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살아온 이유는 분명했다.

태어날 때부터 내가 가야 할 길,

한나라를 지키는 길이 명확했다.

그 길을 지키는 것이 내가 숨 쉬는 이유였다.


위기는 늘 있는 것이었다.

목표만 잃지 않으면 되었다.


조조가 선택한 순욱이 아니라,

순욱이 선택한 조조였다.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달렸다.

판을 굴리고, 또 굴리며

뒤돌아볼 새 없이 질주했다.


전쟁은 늘 있었다.

상황은 내 뜻과 다르게 흘러간 순간들이 있었고

뒤따르던 길과 현실 사이에서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그러나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시 목표를 향해 달려야만 한다.


그의 야망이 방향을 벗어났을 때,

나는 말고삐를 다시 쥐어주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잠시의 이탈이라 여겼다.

다시 방향을 잡아주면 될 일이라고.


그러나 가속 붙은 말은

더 이상 이성을 듣지 않았다.


나는 외쳤고,

채찍을 들었고,

돌을 던지며

노선을 되돌리려 했다.


그는 내가 만든 길을 따라오는 척했다.

그러나 결국 흙먼지를 일으키며

자신이 원하는 길로 달려갔다.


멀어지는 등을 바라보며,

나는 선택해야 했다.

그를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멈출 것인가.


초목.

내 이름처럼, 나는 그가 달릴 길이 되기 위해

덕을 쌓고 기반을 닦아왔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다.

내 나라 한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모든 책임과 충성이 끊긴 자리.

무중력감 속에서 나는 자유를 느끼지만,

동시에 공포를 느낀다.

모든 길이 내 손을 떠났으므로.


내 앞의 빈 찬합.

오롯이 내 선택이다.

무엇을 담을지는 나만 알 수 있다.


나는 찬합의 뚜껑을 조용히 닫는다.

그리고 말고삐를 놓는다.

더 이상 그 누구를 따라가지 않는다.


그저 고요 속에 서서

나 자신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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