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덕 구이 고등어

by 언어미식가

화덕 앞, 불꽃이 살짝 튀고 은은한 연기가 올라온다.

혹여나 비린내가 날까, 쌀뜨물에 고등어를 담그고,

손끝에 쌓인 노하우로 고등어를 구워낸다.


반상이 내 앞에 차려진다.

빛을 받아 윤이나는 촉촉한 고등어살,

정갈하게 그릇마다 담겨있는 반찬들.

정성인지 습관인지 알 수 없는 흔적들까지

오롯이 내 앞에 펼쳐져 있다.


이 반상을 어떻게 음미할지는

오롯이 나의 선택이다.


굽기가 덜했다면 조금 더 익혀 먹고,

굽기가 지나쳤다면 바삭한 식감을 즐기고,

간이 세다면 밥 양으로 조절하고,

간이 약하다면 다른 곁들임으로 균형을 맞춘다.


가시를 제대로 바르지 않아 목에 걸린 기억이 있다면

조금 더 정성스럽게 바를 것이고,

“가시쯤이야 내가 꼭꼭 씹어서 소화시키면 된다”며

호탕하게 뼈째 즐길 수도 있다.


그 방식에 따른 결과는 감내한다.


가시를 바르기로 결정했다면,

‘미각‘ 전, ’ 지각‘이다.

고등어의 구조를 이해하고,

가시 하나하나를 탐색하고.

손끝으로 살을 살짝 누르고,

연결된 뼈의 방향을 관찰한다.

작은 가시들은 바를지 넘길지 머뭇거리게 된다.

어떤 것은 살 속 깊이 숨어 있다.

못 보고 삼키면 가시가 목에 걸려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차근차근 반복하면

점점 지각이 예리해지고,

연결점을 찾아 한 번에 발라낼 수도 있다.

하나씩 발라내는 기쁨,

구조를 읽고 정교하게 움직이는 감각의 즐거움.


예전의 나는 찔리기가 싫어

가위를 들고 날을 세웠다.

“이까짓 가시쯤이야,

젓가락보다 가위로 잘라버리면 그만.”

의욕만 앞서 살은 으스러지고,

조각난 가시들은 더 깊이 박혔다.


처참히 으스러진 고등어는

식어버린 잔반으로 남는다.


지금의 나는 반상 위

고등어의 온기가 식기 전,

살과 가시의 연결을 읽는다.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이어지는지,

가시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구조를 이해한다.


조급해하지 않으면

어떤 가시는 한 번에 발라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가시는 나쁘지 않다.

나는 가시를 바르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밥 한 숟갈을 뜬다.

살결 사이로 스며든 고소한 향,

바삭하게 구워진 껍질의 식감,

묵직한 밥알 사이로 스며드는 간의 균형까지

천천히 음미한다.


충분히 음미해 본 사람만이

다음에는 더 나은 온도로

고등어를 구워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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