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예술, 수채화

농도를 다루다

by 언어미식가

어릴 적 그림을 그리면,

스케치까지는 제법 칭찬을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채색의 단계에 이르면

나는 늘 긴장하곤 했다.


수채화는 되돌릴 수 없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한 번 번지면 완전히 지울 수 없고,

덮어도 밑색은 남는다.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수채화는 물의 농도로 결정된다.

물이 많으면 흐려지고,

물이 적으면 거칠어진다.


종이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결을 거스르면 찢어지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색을 올려야 한다.


아직 마르지 않았으니 기회가 남았다고 여겼다.

조급한 붓놀림이었다.

색은 더 짙어지지 않았고,

대신 종이의 결이 일어났다.


나는 기다리지 못했다.

색을 망친 것이 아니라,

종이를 상하게 했다.


여백이 그림을 완성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였다.

다 채우면 숨이 막히고,

비어 있는 곳이 빛이 된다는 것을.


나는 한때 유화처럼 관계를 덧칠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위에 다시 올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관계는 캔버스가 아니었다.


말은 지워지지 않고,

감정은 완전히 덮이지 않는다.


감정에도 농도가 있다.

과하면 번지고,

말라 있으면 갈라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무리 조절해도

상대의 결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스민다.


관계 역시

모두 설명할 필요는 없다.

남겨둔 말이 오히려 선명해질 때가 있다.


수채화는 색보다 물의 예술이었다.

나는 물감을 탓했지만,

사실은 물의 양을 몰랐다.


그래서 이제는 바로 색을 올리지 않는다.

팔레트 위에서 먼저 풀어본다.

번질지, 머물지, 잠시 지켜본다.


다음을 위해 아무렇게나 생긴 얼룩은 닦아내고,

지금 당장 쓰지 않더라도

마음에 드는 색은 팔레트에 남겨둔다.


같은 색이라도 물의 농도를 기억하고,

종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어느 캔버스라도 괜찮다.

내 팔레트가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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