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와 가마니

어느 회사원의 자기 선언문

by 언어미식가

보자 보자 하니까 보자기인 줄 알고,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인 줄 아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줄로만 여겨졌던 누군가에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이 글을 건넵니다.


보자기는 감싸는 존재입니다.

모난 것을 감추고,

흩어질 것을 묶고,

소중한 것을 다치지 않게 품습니다.


한 장의 천이지만

어떻게 묶느냐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고

그 매듭에는 생각보다 많은 손길과 마음이 필요합니다.


가마니는 견디는 존재입니다.

무거운 곡식을 담고,

창고 한편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킵니다.

거칠어 보이지만 쉽게 찢어지지 않고,

조용히 구조를 받칩니다.


보자기와 가마니는 다르지만

둘 다 ‘담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는 관계를 정리하며 감싸고,

하나는 무게를 대신 받아내며 버팁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그 안에는 분명한 노동과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동료입니다.

누군가의 자리가 더 위에 있거나

더 가볍게 다뤄져도 되는 자리는 아닙니다.


보자기를 함부로 휘어잡는다면

섬유는 상합니다.

가마니를 거칠게 끌고 다닌다면

엮인 결이 풀립니다.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 역할이 존중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존중은 흘러야 합니다.

배려는 오갈 때 비로소 힘을 가집니다.


보자기가 감싸는 힘을 멈추고,

가마니가 무게를 내려놓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분노가 아니라 선택일 것입니다.


더 이상 담지 않겠다는 선택.

더 이상 대신 버티지 않겠다는 선택.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몫은

존중 속에서만 오래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나를 먼저 존중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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