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지 않아도 좋은 것들

생각의 유통기한

by 언어미식가

나는

날로 먹는 것을 좋아한다.


이 말을 들으면 누군가는

미간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수고와 노력 없이 이득을 얻는다는

그 의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날로 먹는다’는

게으름의 언어가 아니다.


신선함의 언어다.


지금 막 딴 과일,

막 건져 올린 생선,

갓 씻어낸 채소.

아직 손때 묻지 않은 어떤 것들.


내가 신선함을 판단하는 기준은 아주 단순하다.


“지금 바로 먹을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세상에는 굳이 오래 익히지 않아도

좋은 것들이 있다고.


가공되기 전의 생각,

다듬어지기 전의 마음,

방금 막 떠오른 이야기들.


어떤 생각은 익히면 맛이 사라진다.


재미있는 건,

나는 생각을 오래 품는 후숙형 인간이라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신선한 것을 먼저 알아보는 사람은

대개 오래 익히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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