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맺음을 위한, 혹은 이어짐을 위한
매듭은 본래 끈이나 실을 묶어 맺은 자리라고 한다.
나는 그 매듭이 관계에도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매듭은 함께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여기를 잡고, 나는 여기를 잡고,
서로 합의하고 교차하며
이제 이건 여기서 종결.
그런데 나는 근래에 두 가지 상황을 지나며,
이 생각에 대해 다시 묻게 되었다.
남겨질 사람들은 매듭을 준비했다.
점심을 먹고, 인사를 하고,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은 보통의 퇴사식이다.
관계를 정리하는 작은 의식 같은 것.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 오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이.
그래서 그날의 점심은
매듭을 기다리던 자리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그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관계를 이렇게 깔끔하게 묶어주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그것을 무례라고 부를 것이고,
누군가는 상처받은 사람의 마지막 방식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그는 매듭을 묶지 않았다.
그리고 매듭이 묶이지 않으면
실은 그대로 남는다.
또 한 가지 장면.
장례식은 이상하다.
관계가 깊지 않았던 사람도
그 앞에 앉으면
갑자기 기억을 찾게 된다.
나에게 그 언니의 기억은
거의 한 장면뿐이다.
하늘색 굵은 머리띠.
긴 머리를 넘기던 젊은 얼굴.
그게 전부다.
그런데 영정사진 앞에 앉아 있으니
그 한 장면이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계속 돌아간다.
사진 앞에는
햄버거, 콜라, 감자튀김, 커피가 놓여 있었다.
임종 직전까지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 음식들이 더 깊게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먹어도 돼.”
장례식은
어쩌면 가장 강제로 매듭을 짓는 자리다.
사람이 떠났다는 사실이
남은 사람들의 관계를 한 번에 묶고,
함께 나누던 크고 작은 일상을 멈추게 한다.
나는 생각했다.
모든 관계가
매듭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매듭은 꼭 함께 짓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관계는
매듭을 묶지 못한 채
그대로 남는다.
어떤 관계는
갑자기 묶여버린다.
우리가 준비하지 않았는데도.
그래서 어쩌면
매듭이라는 것은
사람이 묶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묶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관계는 매듭을 남기고 떠나고,
어떤 관계는 매듭을 남겨둔 채 끝난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누군가와 함께 매듭을 짓기보다
내 안에서 매듭을 짓는 법을 배우고 있다.
매듭은 끝이기도 하고,
이어 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나만의 매듭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