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절전모드입니다.

방해금지 모드도 주의해 주세요.

by 언어미식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핸드폰처럼

내 컨디션에도 배터리 잔량 표시가 있으면 좋겠다고.


지금 내가 몇 퍼센트인지,

더 쓸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니면 멈춰야 하는지

알 수 있다면 좋겠다고.


나는

나의 컨디션 계기판을

잘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건

누가 달아줘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감각이었다.


다른 누가 알아봐 주는

영역이 아니라,

내가 더 긴밀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영역이었다.



도파민이 터질 때,


그 순간을 나는

충전이라고 믿었다.


기분이 올라가면

회복된 것 같았고,


“아, 나 살아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하 호호 웃고 떠들고 나서야

비로소

컨디션이 돌아왔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회복의 기준을

감정과 기분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급속 충전됐다고 믿었던 순간이

사실은

과열된 상태였다는 걸 알게 된 건,


들뜸에서 과속으로,

그리고 급소진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몇 번이나 반복한 이후였다.


갑자기 멍해지거나,

셧다운 되는 듯한 느낌이 들면


‘당이 떨어졌나?’ 싶어

급히 간식을 털어 넣던 기억도 떠오른다.



아,

나는 에너지를 사용한 게 아니라

불살라버리고 있었구나.


급속 충전인 줄 알았는데,

부스터를 단 채

집중 모드로

과열되고 있었던 거였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한 번 더 묻는다.


지금 이건

에너지인가,

아니면 과잉인가.


유한한 에너지를

당겨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면,


나는

잠시 멈춰

숨을 고르기로 한다.



에너지가 소진된 내 모습을

실패자처럼 느꼈던 적도 있다.


오늘도

에너지 분배에 실패한 것 같은 기분에


오히려 더 감추려

과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아니면 반대로

가감 없이 드러내며

패잔병처럼 굴기도 했다.


참,

극단적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나를

더 잘 알아봐 주려고 한다.


누군가가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요?”라고 물으면


싱긋 웃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오늘은 절전 모드입니다.”



과대해석되지도,

그렇다고

나의 상태가 은폐되지도 않도록


서로를 지키는

하나의 기준처럼.



강하게 쓰이기보다는


오래,

그리고 꾸준히 쓰기 위해


나를

소중한 자산처럼

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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