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인데, 채소처럼 살아온 시간

아보카도를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by 언어미식가

나는 내가

빠르게 적응하고,

빠르게 결과를 내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실질적인 필요가 있고,

누군가에게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어쩌면 그건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를

느리고, 부족하고,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앞에서,

나는 자주 숨이 가빴고

나의 부족함이 서글펐다.



내가 좋아하는,

다정하고 깊은 언니와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언니, 나는 요즘 내가

후숙형 인간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자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맞네. 넌 꼭 아보카도를 닮았네.”


나는 후숙 하는 과일이라면

망고밖에 떠올리지 못했던 터라,

그 말이 낯설고도 재밌어서 웃음이 났다.


“아보카도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그러자 언니가 말했다.


혼자보다 같이 있을 때 더 잘 어울리고,

과일 같기도 하고 채소 같기도 한,

몸에 좋은 그런 식재료 같다고.



내가 말한 ‘후숙형 인간’이라는 건 이런 의미였다.


즉각적으로 무언가를 내놓아야 할 때면

나는 늘 덜 준비된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럴수록 더 조급해지고 불안해졌다.


나는 생각을 바로 꺼내는 사람이 아니라,

한 번 더 곱씹고,

내 안에서 천천히 되새김질해야

비로소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시간과 맥락, 관계 속에서

나는 서서히 달라지고,

그제야 의미를 알아차린다.


나에게 변화는

‘순간’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한 뒤에야 생기는 것’이었다.



왜 그 말이 그렇게 인상 깊었을까.


아보카도는 과일일까, 채소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과일이구나.

나는 당연히 채소인 줄 알았는데.


샐러드나 타코 속에서,

다른 재료들과 섞여 있는 모습만 떠올랐다.


단독으로 먹기보다는

무언가와 함께 어울려 존재하는 모양새가

꼭 채소를 닮아 있었다.


덜 익었을 때는

‘이게 뭐지?’ 싶을 만큼 낯설고 어색하다.

때로는 그대로 뱉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잘 익었을 때는 다르다.


그 풍미를,

오롯이 느끼게 된다.


그런데 아보카도는

모두가 부드럽기만 한 건 아니다.


부드러워 보인다고,

아무 생각 없이 콱 깨물었다가는

중심에 있는 단단한 씨앗에

깜짝 놀라게 된다.


말랑한 겉과 달리,

그 안에는 분명한 중심이 있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랬다.


덜 익은 나를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서 흐르는

어색한 공기를,

아마 나보다 더 선명하게 느꼈을 것이다.


나 스스로도 그랬다.


‘에, 이게 뭐지.

왜 나는 이럴까.’


스스로를 의심해 온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는 다시 그 순간들을 꺼내본다.


한 번 더 곱씹고,

시간을 통과시키고 나서야

그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소화하고,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뒤늦게 발현해 낸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모든 요리가 준비됐는데,

아보카도 하나를 기다리느라

식탁이 멈춰 있는 순간은 아닐까.


나는 나를 기다린다는 이유로

때로는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던 건 아닐까.


모든 요리에 아보카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보카도 없이도 먼저 나가도 되는 요리가 있고,

아보카도가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요리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모든 순간에 완벽하게 익어 있을 필요는 없다는 걸.


어떤 나는 덜 익은 채로도

식탁에 올라갈 수 있어야 하고,

어떤 나는 충분히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걸.


나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지만,

모든 순간을 기다리기만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나는 덜 익은 나를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기보다,


기다려줘야 할 상태로

바라보기로 했다.


나는,

시간을 통과해야 비로소 익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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