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봄, 그리고 나의 봄

나만의 벚꽃 축제

by 언어미식가

혹독한 추위였다.


모든 것을 꽁꽁 얼리려는 듯

매섭던 눈보라와 바람을 버텨내고,

멈춰 있던 것들이 따뜻한 봄볕에 녹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이 시간.


나는 오랜 시간 품어왔던 꽃눈을

드디어 개화해 내었다.


벌과 나비가 모여들도록

향을 풍기고,

더 아름다워 보이도록

심혈을 기울여 물들여냈다.


세상에 나를 널리 퍼뜨리고 번식하는 것,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내가 존재하는 이유였다.


나는 피어야 했고,

이어져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여기서 멈추게 된다.


그래서 나는 더 간절하게,

더 짙게 향을 내보냈다.


벌과 나비가 와야만 했다.

나의 꽃가루를 날라줄 존재는 그들뿐이었기에.


그러나 그들을 부르기 위해

펼쳐놓은 내 꽃가지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겨우내 얼어 있던 내 몸은

봄볕을 흡수하기에도 바빴는데,

사람들은 그런 내 몸에

이상한 천과 끈을 칭칭 매달았다.

그 위에는 벚꽃축제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아리송하였다.

나를 위한 축제인 건가?


사람들은 저마다 웃으며 나와 사진을 찍고,

낮과 밤의 구분 없이 뜨거운 조명을 내리쬐었다.

겨울에 그토록 원했던 온기였건만,

지금의 나는 그 온기 속에서 숨이 막혔다.


나는 봄볕 아래에서

벌과 나비와 연결되고 싶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들을 휘휘 쫓아냈다.


나는 누군가의 봄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의 계절로 머물 존재가 아니라,

이어져야 하는 존재였다.


아얏.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나의 가지를 꺾어낸다.

내가 얼마나 지켜내고 피워온 꽃가지인데.


그 가지를 귀에 걸고 웃음을 터뜨린다.

나의 고통이 그들에게는 웃음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그렇게 한 번의 사진을 남기고,

잘려나간 꽃가지는 내 발밑에 의미 없이 버려졌다.


한참 동안 그 꽃가지를 바라보았다.

겨울을 지나고 가장 먼저 뻗어 보았던

그 가지었다.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그래,

누군가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존재라면

그것으로 된 것일까.


아이들의 무해한 웃음,

막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

친구들끼리 깔깔 웃는 모습,

익숙함이 편안해 보이는 부부의 얼굴까지.

나는 그 장면들에 의미를 부여해보려 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나는 이해하려 했지만,

납득할 수는 없었다.


툭, 투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굵어지는 비와 함께

사그라든 줄 알았던 바람이 다시 불어왔다.


하하 호호 웃던 사람들도

옷깃을 여미며 각자의 자리로 흩어져갔다.


나는 붙잡을 수 없었다.

이미 나는 많은 것을 쏟아낸 상태였고,

더는 버틸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피워낸 것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다시 찾아온 정적과 고요.

조용해진 공간에서 추위는 더 살벌하게 느껴졌다.

나는 차근차근 지나간 발자취를 돌아보았다.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나의 꽃잎들,

꽃가지들.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던

사람들의 얼굴마저 떠나버린 이곳은

너무나도 적막했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실패한 것인가.

헛되이 피어버린 것인가.

나는, 잘못 피어난 것인가.


고개를 힘없이 떨구었다.


그때였다.

비바람이 잦아든 순간,

작은 움직임이 보였다.


내 발밑에 떨어진 꽃가지,

내가 만들어낸 그늘 아래

비에 젖지 않은 그 가지 위로

벌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그는 아무 소리도 없이,

분주히 꽃가루와 꿀을 챙겼다.


화려하지도 않았고,

누구의 시선도 없었다.


그러나 그 일은,

아무도 보지 않아도 분명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마치고 다시 날아갔다.


끝나지 않았다.


겨우내 나는 꽃을 피우면,

그 위로 벌과 나비가 모여드는 장면만을 떠올려왔다. 그것이 전부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떨어진 자리에서도,

조용한 순간에서도,

연결은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개화가 끝이라고.

만개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었다.


떨어짐마저도, 이어짐의 일부였다.


꽃이 지고, 그 자리에 잎이 자란다.


나는 다시 살아간다.

단지 버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어지기 위해서.


나는 잎을 펼친다.

더 넓게,

더 깊게.


이제는 안다.

나의 시간은 한순간이 아니라,

계속되는 흐름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안다.

나는 어떤 형태로든,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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