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
나는 그렇게 동그랗게 세상에 나타났다.
나무에 달려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나 재미있고 즐거웠다.
때마다 흔들흔들거리는 리듬이 좋았고
까르르 웃음이 터지곤 했다.
시간은 흘러
우리는 점점 더 성숙해졌다.
살은 통통히 여물었고
제각각 달콤한 향을 풍기며
서로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푸른 우리의 자태는 충분히 빛났고
윤기가 흘렀다.
즐겁고 만족스러운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뭇가지에 살포시 내려앉은 참새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동산 너머에
아주 재미있는 일들이 있대.
감나무 이야기,
도토리가 굴러다니는 이야기,
밟히지않으려 가시를 세운 밤송이 이야기까지.
참새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
그제서야
꼭지 하나로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만족하고 있던 내 모습이
왠지 모르게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작은 바람에도 꺄르르 터지던 웃음은
시시해졌고
이곳은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이 나무를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꼭지에서 떨어지는 방법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제멋대로 힘을 주기 시작했다.
이 나무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만 있다면
못 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힘을 주다 보니
실핏줄이 터지고
몸 곳곳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친구들은
나를 말렸다.
“대추야, 왜 그래.”
“그러지 마.”
“왜 스스로를 그렇게 괴롭혀.”
울며 불며
멈추기를 간곡히 애원했지만
이미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더욱 발버둥칠 뿐이었다.
툭.
마침내 떨어졌다.
낙하의 아픔 따위는
해방감에서 오는 기쁨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전진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우뚝 멈춰선 그곳에서
나에게 더 이상의 여정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곳에서
고독하게 견뎌야 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잠깐일 거야.”
“곧 다시 굴러갈 수 있을 거야.”
스스로를 다독여 보았지만
불안은 점점 짙어졌다.
나무 위에서 맞던 바람은
놀이였는데
땅 위에서 맞는 가을바람은
너무도 매섭고 무자비했다.
윤기 나던 피부는 푸석해졌고
생기를 잃은 몸은
볼품없이 쪼그라들어 갔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 꼭지가 있었기에
생명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이대로
땅바닥에서 생을 마감하는 걸까.
그때였다.
누군가가
먼지투성이가 된 나를 집어 들었다.
다정한 손길로
깨끗이 씻어 주었다.
그리고
따뜻한 온기 속에
나를 풀어놓았다.
그 사람은
미소를 머금은 채
찻잔을 감싸며 말했다.
“오늘 하루 피로가 다 풀린다.”
그제서야
나도 빙긋 웃으며
고백해 본다.
나 또한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