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호흡으로 들숨 그리고 날숨
어릴 적, 탐욕에 관한 한 동화를 읽고
큰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그 동화는 이렇다.
어느 연못에 덩치가 아주 큰 개구리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동네 개구리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개구리는 이미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어느 날 자신보다 더 몸집이 큰 존재를 보게 된다.
그리고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몸을 부풀리다
결국 배가 펑 터져버린다.
그때도, 지금도
그 처참한 장면을 떠올리면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이 동화는 잘못된 욕심이
얼마나 한 존재를 망가뜨릴 수 있는지
충격과 공포로 각인시킨다.
이 이야기는 과연 나의 삶을 바꿔줄 수 있었을까?
함께
그날의 연못가로 다시 가보자.
그곳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연못의 중심이 무너진 그날 이후,
모두가 공포와 혼란을 안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어우,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여기저기서 조심하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몸 부풀리지 않기 운동’이 유행처럼 번졌다.
모두가 자기에게 맞는 이상적인 부풀림,
자기에게 맞는 목청과 크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조심과 절제가 연못가를 뒤덮는 듯 보였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는
모두가 그렇게 주의하는 듯했지만,
조용한 내면에서는 이런 마음이 움트고 있었다.
‘나는 좀 다르지 않을까?’
사실 나는 그 개구리보다 젊고 건강하다.
무엇보다 나는 절제할 수 있다.
맞아, 사실 그 개구리가 멍청했던 거다.
어떻게 배가 터질 때까지 몸을 부풀릴 수 있지?
나는 멈출 수 있다. 나는 다룰 수 있다.
충격과 공포로 잠시 비어 있던 그 자리.
모두가 그 왕좌가 무의미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듯 보였지만,
그들은 서로 시선이 닿지 않게 곁눈질로
그 빈자리를 주목하고 있었다.
주어진 것에 자족하며 살겠다는
굳은 다짐 사이로
‘한 번만 해볼까?’라는
작은 허용이 틈을 벌렸다.
그 틈으로 욕망은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어왔다.
힘을 조금만 더 쓰고 싶고,
내 유익에 맞게 기준을 비틀고 싶고,
멈출 줄 모르고 달려 나가고 싶은 마음들.
형태는 달랐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탐욕의 얼굴이었다.
조용했던 연못가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과열되었다.
비어 있는 가장 아름다운 연꽃잎을
차지하기 위해
모두가 혈안이 되었다.
밀고 밀치는 라운드가
얼마나 반복되었을까.
그때 갑자기, 장내가 숙연해졌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 배 터졌던 개구리 있지?
봉합 수술을 마치고,
기나긴 회복기를 거쳐
오늘 퇴원한대.”
그는 더 이상 장성했던
지난날의 모습이 아니었다.
단단하고 웅장하던 눈빛도 사라졌고,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찢어진 살점은
아직 다 아물지 않았다.
앞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나뭇잎에 앉아
이슬방울을 도르르, 도르르 굴리며
앞으로 천천히 전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살아 있음에,
다시 볕을 느낄 수 있음에
미소 짓는 그 모습은
충격과 공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고요함을 남겼다.
그날 이후,
연못가에서는 더 이상
가장 아름다운 연꽃잎에 대해 관심 갖지 않게 되었다.
누가 가장 크게 부풀 수 있는지가 아니라,
누가 자기 몸으로
가장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지를
조용히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탐욕은
늘 커지는 얼굴로 오지만,
만족은
살아 있는 얼굴로 남는다는 것을
모두가 그제야 몸으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