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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준 Sep 04. 2018

유럽의 기독교 1

유럽여행에 품격을 더하다

#유럽의 기독교


유럽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기독교를 알아야만 합니다. 난 신앙이 없으니까, 난 기독교의 배타성에 거부감이 있어서… 등등 아무리 핑계를 대고 피하려 해도, 이를 알아야만 유럽 자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저도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독자 분들 중에는 분명히 기독교에 반감이 있는 분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신앙심이 깊은 분도 있을 겁니다. 자칫 어설프게 접근했다가는 양쪽에서 욕을 먹기 딱 좋은 주제입니다.

다행히(?) 저는 종교가 없는 사람이다 보니, 오직 인문학적 입장에서, 여행자가 유럽 자체를 느끼고 이해하고 즐기기에 필요한 만큼만 언급을 하려 노력하겠습니다.

신앙으로서의 기독교가 아닌 역사적 인문학적 기독교의 관점만 얘기하겠습니다. 신앙이 있으신 분들은 이런 관점도 있구나 하고 너그럽게 받아주시길 바라며 신앙이 없는 분들도 유럽 사람들은 이렇게 믿었고 이런 식으로 살아 왔구나 하고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역사부터 간략하게 훑어보겠습니다.


초기 기독교

예수의 죽음 이후 제자들의 열성적인 선교 활동으로 점차 교세가 확장되어 나갑니다. 초기에는 귀족들의 착취에 불만이 많았던 서민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파가 되다가 차츰 내세에 관심이 생기던 귀족층까지 서서히 기독교를 믿기 시작합니다. 모든 종교에 관용적인 로마의 정책에 따라 여러 종교가 난립하던 와중에 유독 교세를 확장하던 기독교는 유일신 사상으로 타 종교에 배타적이고 황제를 비롯한 지배층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신에게만 복종하는 태도로 반감을 사기 시작합니다. 지배층 입장에서는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불안 요소로 비추어져 결국 로마에서는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초기 기독교도들은 박해를 피해 지하로 숨어들어 가고 비밀리에 세력을 유지하고 포교 활동을 지속합니다


밀라노 칙령, 기독교 공인

여러 정적들과 황제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콘스탄티누스는 박해 속에서도 나날이 교세가 확장되어 가는 기독교 세력을 등에 엎고자 박해에서 돌아서, 313년에 기독교를 공식 종교로 인정합니다. 유일신 사상을 인정하고 황제가 그 정점에 서는 것으로 기독교 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황제의 권한을 강화해 나갑니다.


콘스탄티노플 시대

콘스탄티누스는 황제에 오른 후 수많은 정적들이 여전히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혼돈의 로마가 아닌 당시 훨씬 더 발전한 문화의 중심인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의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천도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로 명명합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중심은 지금의 로마가 아닌 콘스탄티노플이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소집한 종교회의로서 교리의 통일을 논의하였습니다. 현재의 성경의 기본 골격이 이때 정리되었습니다.


동서로마의 분리

로마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자기의 아들 호노리우스에게는 제국의 서쪽을, 아르카디우스에게는 동쪽을 물려 줌으로써 동서 로마가 분리되게 됩니다.


서로마 카톨릭의 분리

로마 주교인 레오 1세는 초대 교황으로 베드로를 추대하며 자신이 모든 주교 중의 최고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교황임을 선포합니다. 이로서 동로마는 총대주교의 정교로, 서로마는 교황의 체계로 양분됩니다. 동로마의 총대주교는 말 그대로 주교 중의 으뜸임을 뜻하지만 교황은 주교보다 한 단계 높은 레벨의 존재입니다. 따라서 서로마는 교황의 절대 권력을 정점으로 주교, 사제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구조가 수립된 반면, 동로마의 정교는 각 주교 별로 상호 간섭 없이 수평적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해 나가 러시아 정교, 그리스 정교, 불가리아 정교하는 식으로 나라별로 다른 정교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종교개혁

서로마 지역의 기독교 세력의 정점에 있게 된 교황은 면죄부를 판매하는 등 부적절한 권력의 남용 끝에 독일의 루터 목사를 중심으로 원래의 기독교로 돌아가자는 원리주의 운동이 일어납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귀족층과 카톨릭 교단에 대해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 세력이었던 상인 권력이 주축인 북 유럽 국가들간의 대충돌이 일어난 것이 30년 종교전쟁입니다. 유럽에서 벌어진 최악의 전쟁이라는 평을 듣는 기나긴 전쟁을 끝내고자 양 측이 서로를 인정하고 타협하는 베스트팔렌 조약을 맺고 길고 긴 비극의 전쟁이 마무리 됩니다. 이로서 개신교, 즉 프로테스탄트가 탄생하게 됩니다


정리하면, 초기 기독교에서 전통을 지키는 정교와 현실적인 타협을 허용하는 카톨릭으로 나눠지고 그 카톨릭에서 다시 원리주의로 돌아가자는 개신교가 갈라져 나와 총 3개의 큰 주류 세력이 생기게 됩니다


기독교 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3대 종파 중에 카톨릭이 압도적으로 볼 거리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카톨릭에서는 성상(聖像), 성물(聖物), 성인(聖人)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반면, 나머지 종파에서는 그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술품을 감상하고 즐겨야 하는 여행자 입장에서 각 종파의 차이를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독교역사 #니케아공의회 #종교개혁 #루터 #동서로마분리 #교황 #총대주교 #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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