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

숫자를 도망치던 내가 AICPA까지

by 서온

대학교 1학년 1학기.

회계원리 수업으로 '회계학'이라는 걸 처음 접했다.

수업은 한국어였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이해되지 않는 말을 한 시간 넘게 듣고 있는건, 생각보다 고역이었다.

졸음을 쫓기 위해 난 전공책을 펼쳤다.

두꺼운 책 사이에 끼워진 하얀 간지에 같은 문장을 반복해 썼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

하나의 문장을 빼곡히 채우고 나니 수업이 끝났다.

나는 경영학부생이었다.

회계원리와 원가관리는 전공 필수였다

피할 방법이 없었고 난 당당히 재수강으로 학점을 세탁했다.

마지막 졸업을 앞두고 휴학을 고민할때, 전공필수에 중급회계가 포함된다는 말에

나는 과감하게 휴학을 포기했다.

그때만 해도 회계는 그저 '버텨야 하는 과목' 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회사생활은 모든게 숫자로 표현됐다.

나는 마케팅과 영업사이드에 있었는데 모든 보고의 끝은 숫자였다.

영업지원 파트에서 일하며,

전국 수백개의 영업기관의 예산과, 채권관리를 했다.

그리고 업무분장표에 없는 모든 일이 내 업무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재무실과 부딪히는 일들이 많았다.

"서온씨, 학교때 무슨 과였어요?"

"경영학과 나왔습니다."

"경영학과 나와서 이것도 몰라요!"

영업기관의 채권과 관련해서 회계처리에 대한 문의를 했다가 자존심을 긁혔다.

부끄러움이 먼저였고 다음이 오기였다.

홧김처럼 '회계원리 2급'을 취득했다.

그 시험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꿀 줄은 몰랐다.

우연히 계열사로 이동할 기회가 있었고 난 영업, 마케팅으로 지원했다.

그런데 '회계원리 2급' 자격증이 나를 재무실로 이끌었다.

재무실 지원 인력이 없으니 딱 일년만 갔다가 마케팅으로 불러주겠다는 거였다.

그 이후로 마케팅은 다시 경험하지 못했다.

일년 뒤, 나는 전략실로 발령이 났다.

이제 어려운 회계공부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재무실에서 있었으니, 그룹과 소통하는 숫자를 총괄 관리하라고 했다.

단순히 실적의 증감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답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숫자의 맥락을 설명해야 했고, 숫자로 설득해야 했고, 숫자로 책임져야 했다.

그렇게 10년이 넘게 숫자와 함께 보냈다.

회의를 통과하는 것도 숫자였고, 보고를 마무리하는 것도 숫자였으며,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 역시 숫자였다.


둘째 육아휴직 후 복직했을 때, 난 배려라는 이름으로 일에서 배제 되는 걸 경험했다.

첫째를 낳고 복직했을 땐 솔직히 그 배려가 고마웠다.

밤에 통잠을 자지 않는 아이와 씨름하다 출근해서 일에 치이다 보면 정말 녹초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가 되어 경제적 주체가 된 나는 불안했다.

'필요없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의 배려가, 내 자리를 조금씩 지우고 있었다.

일로서 부족한 사람이 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생각한 게 공부였다.

1학년 때 그렇게 싫어했던 회계의 가장 깊은 자리, AICPA(미국공인회계사) 였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숫자를 다루며, 같은 말이라도 무엇이 그것을 지탱하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는 것을 배웠다.

아이들을 재우고 조용해진 밤.

나는 다시 숫자를 펼쳤다.

이번에는 '내 길이 아니다'라고 쓰지 않았다.


나는 숫자를 싫어했다.

그런데 그 숫자가 나를 지켜주는 언어가 됐다.

지금도 마음이 불안할 땐 공부를 한다.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는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라고 쓰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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