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량이 꿈이었다.
2025년은 이상하게 하루도 가벼운 날이 없었다.
일은 많았고, 성과는 내 책임이었고, 불안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매일같이 영혼을 갈아넣는다는 표현이 나한테 하는말 같았다.
일에 대한 회의와 내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답답함에 어디라도 털어놓을 곳을 찾고 싶었다.
그게 점집이었다.
불안함이 커질수록 내 핸드폰에 점집 전화번호가 늘어갔다.
하지만, 막상 가려고 하면 혹시나 나쁜 점괘가 나올까 망설여져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렇게 주저하던 내가 작년 말 부터 지금까지 두번의 점집을 찾았다.
그것도 예약없이 충동적으로.
사주를 보러 갈때는 꼭 질문할 내용을 미리 적어가야 놓치지 않고 물어 볼수 있다는 말에
점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질문을 노트에 적었다.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할까요?'
나의 첫번째 질문지는 언제나 같았다.
'나는 한량으로 살고 싶습니다. 언제 가능할까요?"
이 말을 완곡히 돌려 표현한 말이다.
두곳 모두 내가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마치 내 질문을 알기라도 한듯 말했다.
"평생 일할 팔잔데."
나는 내 질문을 예상이라도 한듯 던지는 이야기에, 믿음 가득한 눈빛으로 다음 질문을 던진다.
"금전운은요?"
"56세부터 대운"
"그때까지는요?"
"열심히 일해야지."
"그럼 언제까지 일해야 할까요?"
"일 안하면 아플 팔자야. 75세에도 일하는게 보여."
아무리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서 이야기 해도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나는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저는 한량이 꿈인데요, 한량은 안되나요."
"그건 다음생을 기약해"
단호박같은 어투였다.
두달 전, 첫번째 점집과 너무도 똑같은 답변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때의 경험에서 나는 더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는 걸 배웠고, 다시 한번 더 질문을 했다.
"설마 생계를 위해서 그때까지 일을 해야 하는 걸까요?"
나는 속으로 제발 아니라고 해달라고 빌었다
"56세부터 대운이 들어오는데, 돈이 들어올때 일을 안하면 몸이 아파."
전의를 상실했다.
그제야 점술가는 나의 만족도가 걱정이 되었는지 말을 덧붙인다.
"56세부터 쭈욱 대운이 들어와서, 80대에 봄이오네."
"저는 장수 하겠네요."
"사주가 몸이 너무 차. 몸이 찬 사람이 단명하기 쉬우니 건강관리를 잘해야돼.
홍삼이나, 생강차가 몸을 따뜻하게 하는데 좋아. 꿀에 절인 생강차를 마셔봐"
이게 무슨 말이지.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
점집을 나와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나씩 복기하며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웃음이 났다.
내 첫 질문은 어쩌면 직장인들의 희망사항이자, 모두가 묻고 싶은 질문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답변에 모든 의심을 내려놓게 되었는데.
내가 가진 그 믿음은 점술가의 신통한 예지력이 아니라,
그 동안 점집을 다녀간 사람들의 통계였던 것이다.
"나 75세까지 일해야 한대"
"능력 좋으네. 능력 없음 그때까지 일하고 싶어도 못해"
나는 점집에서 위로를 받지는 못했지만 여동생에게서 현실적인 축복을 받았다.
"그냥 재미 삼아 보는거지. 어찌되었든 말년은 좋다는 거잖아"
"맞아. 재미로 보는 거지."
짧게 전화를 끊고 나는 쿠팡을 열었다.
그리고는 '꿀에 절인 생강차'를 입력하고,
가장 최상위에 있는 제품을 고민도 하지 않고 구입했다.
'평생 일할 팔자라면, 몸이라도 따뜻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