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피폐함이 보여야 합격입니다.

그말에도 나는 환불하지 않았다.

by 서온

수험 생활은 주 4일 오프라인 수업을 등록하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고 싶었다.

엉덩이 힘을 키우자는게 목표였다.

퇴근하면 침대에 먼저 몸을 던지던 나였다.

책상에 앉아도 10분을 채 못 버티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곤 했다.

무언가를 ‘끝까지’ 해낸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주 4일 중 3일은 평일 저녁 7시 수업이었다.

나는 두 아이의 경제적 책임자이자 직장인이었다.

회사 일이 늘 최우선이었고, 야근을 하면 수업을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근무시간에 더욱 집중했다.

업무 효율을 극대화했고, 일이 밀리면 수업이 없는 이틀을 최대한 활용했다.

저녁 6시 20분, 회사를 박차고 나와 교대로 향했다.

교대역 게이트에서 나오면 지하철 역사 안에 빵집이 있었다.

빵굽는 향은 항상 나를 잡았고 커피번 하나를 사야 지나칠 수 있었다.

일종의 통행세 같았다.

입에 넣어 우걱거리며 학원을 향했다.

강의실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앞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빽빽했다.

200여명 넘는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로 별도의 난방이 필요 없어 보였다.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처음 놀랐고 나보다 나이 많은 수험생들이 많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늘 수업 직전에 도착했기에, 내 자리는 항상 강의실 맨 뒤였다.

시력이 좋지 않아 녹색 칠판을 보기 위해 매직아이를 보듯 눈을 부릅 떴다.

강사님과의 오리엔테이션은 무서운 경고로 시작했다.

“여러분, 수험생이 된 이상 빨리 끝내세요.

하루에 충분한 잠을 자면서 합격할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여러분의 얼굴에 피폐함이 보여야 합격입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는 이미 피폐한데, 더 망가져야 하나.’

‘1층에서 듣던 내용과는 다른데, 하루 2시간이면 된다더니. 지금이라도 환불할까.’

곧이어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해보지 않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자. I can do it

수험서 첫 장에 글귀를 적어내려가는데, 또 다시 얼굴이 뜨겁게 달아 올랐다.


수업은 늘 늦게 끝났다.

10시 30분이 넘어서도 강의는 계속됐고, 11시가 되어서야 수업이 마무리됐다.

집에 도착하면 자정이 넘었다.

아이들의 방문을 조용히 열어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내 하루가 끝났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내가 포기하면 안되는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알람은 다섯 시간 뒤에 울렸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마지막 지하철을 놓칠까 봐 강의실을 가장 먼저 뛰어나갔다.

‘헉헉헉’

한겨울인데도 얼굴과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띠링띠링띠링’

지하철 문이 닫혔다.

아싸. 오늘도 성공

스크린도어에 비친 내 얼굴에는, 세상을 다 얻은 사람 같은 미소가 떠 있었다.

그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뭐지, 이 두근거림. 뛰어서 그런가?’

두근. 두근.

점점 선명하게 느껴지는 심장소리. 설렘이었다.


대학 시절, 중앙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다 막차를 타기 위해 뛰던 밤들이 떠올랐다.

어두운 하늘의 별빛, 도서관 앞 가로등, 계절마다 다른 바람의 냄새.

그 모든 것 속에서 하루를 충실히 살아냈다는 감각.

지금의 두근거림도 그때와 같았다.

도시의 네온사인은 별빛처럼 반짝였고, 달리며 스치는 바람은 따뜻했다.

집으로 가는 길,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 하나가 유난히 반짝였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나는 그날부터 결과를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 과정을 견디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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