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다는 마음.

비교 속에서 나를 배우던 날들

by 서온


나는 특별하고 싶었던 아이가 아니라,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이 늘 마음에 걸리던 아이였다.

우리 가게 뒤에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한평이 조금 넘는 그 공간은 가게도 보고 살림도 하는 엄마의 아지트였고, 동시에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동네 사랑방이었다.

나는 종종 그 방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종갓집 맏며느리였고, 우리 집은 딸이 다섯에 아들이 하나인 소위 딸 부잣집이었다.

“이 집 막내딸 나 줘~! 내가 스무살까지 키워서 데려다 줄게”

동네 아줌마들은 집에 올 때마다 여동생을 탐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맞장구를 치며 뭐가 그리 재미난지 소리 내어 웃으셨다.

그 장면은 늘 비슷하게 반복됐다.

나는 그런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장난인줄 알면서도 마음 한켠이 시큰했다.

‘왜 맨날 여동생만 달라고 하지? 나는 마음에 안드나?’

아무에게도 묻지 못한 질문을 혼자 삼키며 자리를 떴다.

그때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관심이 모이는 방향에서 나는 늘 한발쯤 뒤에 서 있었다는 걸.

우리집에서 나를 뺀 형제자매들은 다들 특별해 보였다.

위에 세명의 언니들은 공부도 잘했고, 눈에 띄게 예뻤다.

여동생은 애교와 흥이 넘쳐 동네 아줌마들 앞에서 늘 주인공이었고, 늦게 얻은 남동생은 집 안팎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 사이에서 나는 빠지지도, 튀지도 않는 아이였다.

누구의 기준에도 정확히 걸리지 않는 아이.

나는 남들의 장점만 모아 나와 비교했고, 그 비교 속에서 나 자신을 조금씩 낮추는 법을 배워갔다.

엄마는 생선을 사오시면 항상 가게 뒤에서 지하수를 틀어두고 생선을 손질하셨다.

나는 그 앞에 배를 깔고 누워 그 모습을 보며 툭 던지듯 물었다.

“엄마! 손가락을 하나씩 깨물면 다 아프겠죠?”

“당연히 아프지.”

근데 조금 덜아픈 손가락도 있지 않을까요?”

엄마가 생선을 다듬다말고 잠깐 멈칫 하셨다.

“엄마는 육남매 한명 한명이 너무 귀하고 소중해.

널 가졌을때 엄마가 좋아하던 우동을, 지금도 우동을 좋아하는 널 보면 참 신기해.”

엄마는 내가 뭐가 걱정인지 알아차린듯 나를 안아주셨다.

나는 툴툴거리면서도 나만을 위한 그 시간이 좋았다.

엄마가 들려주는 나의 어린시절 이야기에서 나는 잠시 안심할 수 있었다.

그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만 보였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은 잘 보지 못했다.

“공부 잘하는 우리딸.”

언니들을 향한 칭찬을 들을 때면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성적이 조금 오르자 이번에는 또 다른 기준을 원했다.

성격 좋다는 이야기가 듣고 싶다며 여동생을 잡고 울기도 했다.

“그건 내가 공부를 못하니까 성격좋다고 하는거지! 공부 잘하면 좋은거지 뭘 그걸 가지고 속상해 하냐!”

동생은 우는 나를 달래며 이해 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때의 나는 모든 기준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의 칭찬 속에서만 안도했고, 사회가 정한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세상의 기준을 따르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이미 그 기준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가장 엄격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 비슷한 장면을 내 아이들에게서 마주하게 됐다.

얼마 전 둘째가 할머니에게 말했다며 전해 들었다.

“엄마는 누나가 해달라고 하는것만 다 해주는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에게 편애를 한다고 느끼게 만든건 아닐까. 불안이 밀려왔다.

며칠 뒤에는 첫째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동생만 그렇게 칭찬해?”

나는 두 아이를 다르게 사랑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두아이가 내가 어릴적 경험을 느끼게 할 까봐 더욱 조심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사랑의 총량이 아니라, 사랑이 드러나는 방향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나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본 아이였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동네 아줌마들이 여동생만 달라고 하던 말 앞에서, 괜히 마음이 시큰해지던 어린 날의 나였다.

나는 그때도 분명 사랑받고 있었다.

다만 그 사랑이 내 마음에 닿는 언어로 건네지지 않았을 뿐이다.

아이는 사랑을 의심해서 비교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서 비교한다는 걸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는 아직 답을 모른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덜 상처받을지, 덜 오해할지 확신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내가 평범하다고 느끼며 자라온 이유는,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해석하는 기준을 너무 일찍 바깥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이들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재단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