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이라고 적던 아이의 비밀
녹색 칠판 오른쪽 아래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오락실 간 사람」이라는 항목 아래, 또박또박.
그 시절에는 그런 식이었다.
반장 이름, 떠든 사람, 숙제 안 한 사람. 그리고 그날은, 오락실에 간 사람이었다.
“이거 누가 썼어?”
내가 묻자 아이 하나가 말했다.
“너 오락실 들어 가는거 다 봤어”
나는 울컥했지만 이를 악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억울해서가 아니라, 들켰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오락실을 운영하셨다.
전자기기를 잘 다루던 아빠는 직접 기판을 손보며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로 그 가게를 선택했다.
하필이면, 학교에서 가지 말라고 하는 곳 중 하나였다.
나는 친구들한테 부모님이 오락실 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부모 직업을 쓰는 칸에는 늘 ‘자영업’이라고만 적었다.
언니들이 그렇게 쓴 걸 보고 그대로 따라 썼다.
구체적으로 쓰지 않는 게, 가장 안전한 답처럼 느껴졌다.
사실 친구들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가게 문을 닫고 부모님이 청소를 하는 동안 나는 원하는 만큼 오락을 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공간이 싫었고 부끄러웠다.
그 뒤로는 가게에 들어갈 때마다 주변을 좌우로 살피고 들어가거나 옆길 쪽문을 통해 휙 하니 들어갔다.
오락실 딸이라는 말이 나를 한 칸 아래로 데려다 놓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무렵, 내가 부러워하던 친구가 있었다.
부모님이 슈퍼를 하던 친구였다.
함께 집에 가는 길에 들러 인사를 하면 아주 자연스럽게 과자를 하나 쥐어 주셨다.
“넌 진짜 좋겠다. 먹고 싶은 과자 원할 때 뭐든 먹을 수 있어서”
“아냐 그거 파는 거라고 안주셔”
친구는 말했다.
오히려 친구는 오락을 실컷 할 수 있는 나는 내가 더 부럽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 집도 오락실 말고 슈퍼를 했으면 좋겠다.
맛난 것도 많이 먹고 친구들도 엄청 좋아할 텐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소문은 자연스럽게 퍼졌다.
“너네 집 오락실 한다며?”
“한 번만 가보면 안 돼?”
“너는 진짜 좋겠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그 다음부터는 조금씩 기분이 좋아졌다.
‘뭐야! 오락실이 이렇게 좋은 거였다고’
어느 순간부터는 부모 직업란에 ‘자영업’ 대신 ‘오락실’이라고 적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배웠다.
같은 사실도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는 것을.
그때는 이름이 없었지만,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 감정이 ‘계급’이라는 언어로 불린다는 것을.
문득 떠오른 장면이 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핵심 카피로 끝나는 아파트 광고였다.
사는 곳이 곧 그 사람의 품격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던 광고였다.
실제 요즘 아이들은 서로 어디에 사는지, 아파트 이름은 무엇인지 묻는다고 한다.
어른들은 그 아이네 부모는 무슨 일을 하는지 아이에게 묻는다.
그 질문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던 건, 내가 이미 오래전에 같은 질문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지 말라고 하던 곳.
부모님이 운영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던 그 공간.
나는 이미 보이지 않는 기준표 위에 올라가 있었다.
부끄러움도, 자부심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시선이 만들어낸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언제든 바뀔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