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시간이 답일 때도 있다.

by 서온

“엄마, 나 앞머리 좀 잘라야 할 것 같아요.”

아들이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한다.

눈을 찌르는게 불편하다고, 미용실에 가야겠다고 했다.

미용실에 도착하자, 아들은 익숙한 듯 보조 의자를 챙겨서 자리에 올려놓고 앉는다.

“저는 투블럭으로 해주세요.”

“평소처럼 해줄까?”

“아니요. 6mm 로 해주세요.”

사장님과 나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같은 장면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이 다섯 살이던 시절, 미용실은 우리에게 늘 실패에 가까운 장소였다.

한 달에 한 번, 아들을 데리고 미용실에 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사탕과 초콜릿으로 겨우 달래 의자에 앉혀도 가위를 보는 순간 아이는 온몸으로 거부했다.

마치 병원에서 주사를 앞둔 아이처럼, 가위는 아이에게 공포의 상징이었다.

사장님이 아이 손에 간식을 쥐어주고 말을 붙여도, 한번 울음이 터지면 그날의 이발은 포기해야 했다.

우리는 머리를 자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 아이가 이제는 먼저 미용실에 가자고 한다.

“괜찮은 것 같은데, 조금 더 있다가 가자.”

“아니요. 엄마 머리카락이 나를 엄청 귀찮게 해요.”

무엇이 우리 아들을 이렇게 바꿨을까?

미용실도, 사장님도, 가위도 그대로인데 말이다.

가위가 더 이상 무섭지 않다는 걸 몸으로 배운 결과일까.

아니면 어른들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일들이 정말로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변화는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처음 아이들과 셋이 되었을 때 난 다시 웃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하루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었고, 그 시간 속으로 가라앉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일조차 버거웠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은 공허했고, 희망이라는 단어는 내 삶과는 무관해 보였다.

회사에 복귀한 뒤, 명절이 다가오면 나는 늘 긴장했다.

의례적인 인사와 질문들이 유난히 날카롭게 느껴졌다.

“멀리 가야 하는 사람들도 많은 데 얼른 들어가세요.”

“시댁이 어디에요. 멀어요?”

“아.. 네”

짧은 대답 뒤에는 설명하지 않은 수많은 사정이 엉켜 있었다.

몸이 굳고, 말수가 줄었다.

그래서 명절 전날에는 휴가를 내고, 회사를 피하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도망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때의 나에게는 최선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명절은 더 이상 피해야 할 시간이 아니게 되었다.

긴 연휴를 앞두고 차 안에서의 교통 체증을 걱정할 이유도 없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친정 방문 시기를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나는, 그저 조용하고 편안한 쉼을 기다린다.

시간이 약이었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나는 특별한 노력을 한 적이 없다.

극복을 다짐한 것도, 누군가에게 위로받은 것도 아니다.

그저 하루를 넘기고, 또 하루를 살았을 뿐이다.

잘 견딘 날도 있었고, 무너진 날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그 흐름 속에서 감정의 모서리는 조금씩 닳아갔다.

아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가위가 사라진 게 아니라, 가위 앞에서 울지 않아도 괜찮았던 경험이 쌓였을 뿐이다.

두려움은 단번에 사라지지 않지만, 반복되는 무사함은 마음을 설득한다.

문득 떠오른 또 다른 장면이 있다.

아이들이 어릴 적, 나는 매일 동네 놀이터에 놀러 나갔다.

그네를 밀어주려고 했지만 특히 첫째는 무섭다며 그네를 타지 못했다.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을 견디지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어느 날부터 첫째는 아주 낮게, 거의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그네에 앉기 시작했고, 몇 주 뒤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하늘을 향해 발을 뻗었다.

누가 가르친 것도,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내 아이의 시간 속에서, 두려움은 조금씩 자리를 옮겼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많은 변화는 그렇게 일어난다.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어떤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고, 어떤 기억은 문득 고개를 든다.

하지만 시간은 감정을 다룰 수 있는 거리와 여백을 만들어 준다.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마음을, 견딜 수 있는 크기로 줄여준다.

그래서 나는 요즘, 무언가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이나 누군가를 볼 때 쉽게 재촉하지 않으려 한다. 아직 시간이 필요한 상태일지도 모르니까.

지금은 울고 있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미용실 의자에 앉게 될지도 모르니까.

가위는 여전히 날카롭고, 명절은 매년 돌아온다.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달라질 수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 우리를 조금씩 다르게 놓아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오늘도 아들의 짧아진 앞머리를 보며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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