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이라는 보호막

성향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작게 만들고 있었다.

by 서온

매년 새해가 되면 정기 인사이동이 있다.

그 시기가 되면 사람들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조직 개편과 부서이동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서온아, 넌 이동 생각없어? 가고싶은 부서도 없고?"

난 그 질문 앞에서 늘 잠시 멈췄다.

그래서일까.

20년이라는 회사생활 동안 나는 상사에게 먼저 부서이동을 건의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이동도 현저히 적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이유로 나는 늘 새로운 선택앞에서

한발짝 물러났다.


어릴적에는 단순했다.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공부'만 하면 되었다.

내가 하고싶은 게 뭔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주어진 길 위를 성실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었으니까.

학창시절, 말 잘듣는 '모범생'이라는 타이틀은

인생을 돌아가지 않고 빠르게 가게 하는 급행열차 같았다.

그 덕에 나는 무리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설명하기 어려움 답답함이 남아있었다.

잘 가고 있는데 어딘가는 비어있는 느낌.

회사에서 내 업무에 대한 회의가 들때 쯤, 나는 뒤늦은 사춘기를 맞았다.

'자아찾기'라는 이름으로.


그러던 어느날, 동기 몇명이이 새로운 부서로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글쎄.. 내 성향과 안 맞아서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말을 내뱉고 나서야 스스로 놀랐다.

'내 성향이라니.'

나는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단정짓고 있었던 걸까.


'나는 어떤 사람이지?'


서점에 가면 "나 답게 살라"는 문구가 적힌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문장 앞에 오래 서 있곤 했다.

그러고는 집에 돌아와 조용히 나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서점에서 그런 문구의 글을 읽으면 한참을 그곳에 서서 책을 읽었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아.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못해.

나는 혼자 있는게 편해.


특히 최근에는 MBTI가 유행하면서 나는 더 쉽게 나를 분류했다.

외향형, 내향형.

잘 맞는 일, 맞지 않는 일.

그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것이 오히려 편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대학시절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분명 나의 20대였는데,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대학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 대학때 어떤 학생이었어?"

"너는 동해번쩍 서해번쩍 뛰어다녔잖아.

건물 앞에서 웃는 소리가 건물 4층 강의실까지 들렸어."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정말 그랬다고?"

지금의 나는 사람 많은 자리를 피하고, 회의자리에서도 먼저 손을 들지 않는 사람인데.

친구들의 말을 듣고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내가 잊고 있던 나를, 타인이 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 다움'이라고 믿어온 말들이, 사실은 나를 지키기 위한 보호막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실패하지 않기 위해.

어색해지지 않기 위해.

괜히 도전했다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는 성향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설명했고, 그 설명은 점점 나를 작게 만들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한가지를 바꾸었다.

어떤 일이 주어졌을때, '내가 잘 할수 있을까'를 묻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생각한다.

'이 경험이 나를 어디까지 데리고 갈까?'

먼저 시작을 하고, 하면서 고민을 한다.

그러다 보면 예기치 못한 나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게 된다.

이제야 조금은 알것 같다.

나다움은 지켜야 할 성격이 아니라, 겪어보면서 확장되는 영역이라는 것을.


후배들이 시작을 망설일때 나는 이야기 해준다.

"그냥 우선 해봐.

해보기 전까지는 그 일이 너와 맞는지,
아니면 네가 더 커질 수 있는 자리인지 아무도 몰라.”


나다움은 찾는 것이 아니라, 겪으면서 생겨나는 것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아직도 계속 새로워지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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