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때 듣고 싶었던 말.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 버티고 있습니다.

by 서온

주말 늦은 아침,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으면 아이들이 하나둘 내 품으로 파고든다.

셋이서 누워도 한참 여유가 있던 침대는 다 자란 아이들로 금세 가득 찬다.

서로가 나를 더 많이 차지 하겠다고 다투는 모습에 잠시 월드스타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따뜻함이 온몸으로 퍼지고, 웃음이 아무 이유 없이 새어 나오는 시간이다.

하지만 10년 전의 나는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기대 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처한 상황을 온전히 나의 잘못으로 돌리며, 땅을 파고 웅크린 채 울던 시간이 있었다.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체념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가장 가혹하게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인터넷을 헤매고 다녔다.

검색창에는 그 시절 내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수많은 글을 읽으며 공감했고, 잠시나마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었다.

누군가는 나보다 더 깊은 어둠을 지나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럴때면 안도감과 함께 묘한 미안함이 찾아왔다.

하지만 화면을 덮고 나면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괜찮아 질거야’ 위로가 아닌 ‘어떻게 괜찮아 질 수 있을까’가 알고 싶었다.

막연한 미래가 아닌, 조금이라도 현실적인 내 모습을 그려 보고 싶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그때는 내 이야기로 말해주자.

힘들어도, 느리더라도, 나아갈 수 있다고.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에게 위로 받고 공감받았던 나를 보며

나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동안, 나 스스로를 생각할 여력조차 없던 시간이 흘러갔다.

아이들의 따스함에 행복함이 느껴지던 날.

나만의 약속이 생각났다.

브런치 가입 화면에서 몇 번이나 뒤로가기를 눌렀다.

‘내 이야기를 누가 읽겠어’라는 생각이 먼저 올라왔다.

그래도 결국, 나는 발행을 눌렀다.


내 이야기는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성공한 사람의 신화가 아니다.

어떤 하나의 사건을 말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좌절과 상처,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었다.

나는 과거를 이겨낸 사람이 아니다.

다만, 불안을 몰아내는 대신 옆자리에 앉히는 법을 배웠다.

어떤 날은 불안과 함께 밥을 먹었고,

어떤 날은 상처를 데리고 출근을 했으며,

어떤 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루를 마쳤다.

그리고 그런 날들이 쌓여 나는 다시 ‘나아가는’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

사람마다 경험하게 되는 좌절, 상처, 불안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그 속에 웅크려 있는 ‘희망’이라는 아이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고 믿는다.

내 이야기가 어떤 정답을 제안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지금 힘든 누군가에게 이 말만은 전하고 싶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 버티고 있습니다.”

그 말을, 그 시절의 내가 가장 듣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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