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네"라고 대답했다.
대학 시절, 취업을 위해 회사 이력서를 쓰며 나를 설명하는 문구로 자주 적었던 말이 있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이 문구는 사마천의 「사기」책의 춘추전국시대의 자객 ‘예양’이 남긴 말에서 유래했다.
예양은 여러 주군을 섬겼지만, 그를 평범한 신하로 대했던 이들 곁에 머물지 않았다.
그러다 자신을 ‘선비’로 극진히 대접해준 지백을 만난다.
그러나 지백은 조양자에게 죽임을 당했고, 예양은 복수를 결심하며 이 말을 남긴다.
지백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는 온 몸에 옻 칠을 해 외모를 바꾸고 숯을 삼켜 목소리까지 변하게 하며 끝까지 복수를 시도한다.
이 말은 단순한 충성의 선언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준 사람에게 보내는 절대적인 신의’에 가까웠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이 문장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처음 이 문구를 접했을 때, 이 문구가 내가 지향해야 할 삶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성과보다 관계를, 결과보다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나를 인정해준 사람의 신뢰만큼은 끝까지 지켜내는 사람.
나의 미덕이자 강점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늘 열심히 살았다.
누군가 나를 믿어주면, 그 믿음을 어기지 않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나는 너를 믿는다”
이 말을 들으면 나는 그 기대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더 밀어 붙였다.
‘아니요’라는 말을 해본 기억이 별로 없었고, 나는 언제나 ‘네’ 로 살았다.
그 ‘네’는 성실함이 아니라, 나를 증명하려는 방식이었다.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도 다르지 않았다.
나를 믿어주는 상사가 있었고, 그에 대한 신뢰를 실망으로 돌려주고 싶지 않았다.
주변에서 나에 대한 칭찬을 한 이야기를 들을수록 더욱 쉼 없이 달렸다.
그 시절 성별, 나이에 따라 승진이 누락 되기도 했다.
동기들 중 나는 가장 어린 나이 였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첫 승진에서 누락 되었을 때, 상사는 나를 대신해서 화를 내고 술을 마시며 나를 위로했다.
나는 전혀 속상하지 않았다.
‘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의 신뢰가 객관적 평가보다 중요 하구나.’
덕분에 인정은 비교적 빨리 찾아왔다.
일을 잘한다는 말, 믿고 맡길 수 있다는 평가도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칭찬은 나를 쉬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음 단계로 나를 밀어 올리는 발판이 되었다.
잘했다는 말 뒤에는 늘 나의 부족함이 들킬 것 같은 불안감이 존재했다.
이번만 잘 해서는 안 된다. 나의 바닥을 들켜서는 안 된다.
퇴근길에 집으로 향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하루가 조용히 되감기처럼 돌아갔다.
회의에서 했던 말 한마디, 메일에 적은 문장 하나를 떠올리며 혹시라도 실수는 없었는지 스스로를 점검했다.
하루를 복기하는 일은 습관이 되었고, 나는 늘 ‘무사히 넘겼다’ 는 마음으로 잠들었다.
잘해냈다는 만족보다는 실망 시키지 않았다는 안도에 가까웠다.
그 안도는 오래가지 않았고, 다음 날이 오면 같은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잘하면 잘할수록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고, 기대는 점점 높아지는 것 같았다.
내가 그 기대에 맞는 사람이 되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
멈추는 순간, 내가 그 신뢰에서 밀려날 것만 같았다.
그 즈음, 나에게 새로운 업무가 주어졌다.
모든 사람들이 그 일은 힘들다고 백기를 든 상태였다.
나는 신뢰하던 상사가 부탁하는 일이라 거절할 수 없었다.
아니, 더 잘해 내고 싶었다.
낯선 업무에 빨리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고,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집을 가지 못했다.
많은 업무량에 매일같이 보고서를 쓰면서, 그 와중에 업무를 익혀야 했다.
한 달 동안 7kg이 빠졌다.
이해가 가지 않아 멈추면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건드리면 툭 하고 터질것 같은 얼굴로 일을 했다.
여러 날이 지났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하루를 다 산 기분이었다.
쉬어도 회복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몸은 계속 앞으로 가고 있었지만, 마음이 따라오지 못했다.
가슴이 답답해졌고, 회의실 문 앞에서 이유 없이 숨이 가빠졌다.
그럼에도 나는 자리를 비우지 못했다.
멈추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실망시키면 어떻게 하지’
그 생각에 잠들기 직전 심장이 이유 없이 빨리 뛰고, 아무 일도 없는데 눈물이 났다.
괜찮다고, 조금만 더 견디면 된다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그 말은 더 이상 몸에 닿지 않았다.
끝내 몸은 내게 파업을 선고했다.
보고를 끝내고 나왔을 때, 뒷 목을 타고 오르는 찌릿한 신경에 식은땀이 흐르고 온몸이 떨렸다.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몸을 이끌고 회사 앞 한의원에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온몸에 대침으로 혈을 뚫고서야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그렇게 나는 번 아웃이라는 단어를 알기 전부터 나를 거의 다 써버린 상태였다.
타인의 기대에 맞춰 나를 끌어올리는 동안 정작 나 자신을 돌볼 여지는 남겨두지 않았다.
사마천의「사기」에서 예양은 끝내 조양자에게 들켜 죽임을 당한다.
조양자는 그의 충의에 감복하지만 살려 둘 수는 없었다.
죽기 전 예양은 마지막 청을 한다.
“그대의 옷이라도 빌려주시오. 그것이라도 칼로 베어 복수하려는 내 마음을 달래고 싶소.”
예양은 그 옷을 세 번 내리친 뒤 이렇게 말한다.
“이제야 지하에 계신 지백께 보고 드릴 수 있겠구나.”
예양은 자신을 알아봐 준 사람을 위해 끝내 자신을 소진했다.
이 이야기를 아름답다고 믿으며 아주 오랫동안 같은 방식으로 나 자신을 써왔다.
나는 죽지 않았지만, 나를 태워 가며 살고 있었다.
나는 살아있었지만, 나를 위해 살아 있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