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전사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라떼같은 소리 하고 있네

by 공유쓰

첫째의 낮잠시간이 다가왔다. 둘째를 씻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이틀째. 육아휴직하기 전부터 어제까지는 아내가 둘째 목욕을 거의 혼자 하다시피 했다. 나는 옆에서 보조를 빙자한 견학을 하며 얼렁뚱땅 목욕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인 오늘... 딱 오늘까지만 버티면 아마 둘째의 목욕은 은연중에 아내의 일로 정해질 것 같았다. 행복 회로를 잠시 돌리다 오늘은 내가 씻겨보겠다고 말했다. '니가?' 아내는 놀란 듯 보였지만 나는 태연히 '이제 나도 어엿한 전업 육아 전사이니 못하는 게 없어야 한다'고, '첫째도 내가 종종 목욕시키지 않았느냐?'라고 했다. 육아 전사라는 말이 웃겼는지 깔깔대던 아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니가 해보란다. 까짓 거 육아 전사가 못할게 뭐냐고 목욕물을 받고 아기를 안은 뒤 욕실로 향한다. 순간 내 뒤통수에 날아온 아내의 말. '닦일 건 들고 가지? 입힐 건 챙겨놨지? 샴푸는 꺼내놨지?!' 육아 전사는 무언가에 발목이 잡힌 듯 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겉모습은 걸음을 멈춘 것뿐이었지만 완전히 허를 찔린 그의 속은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애만 덜렁 물에 빠뜨리려던 육아 전사... '원래 전사는 싸우기만 하는 거다. 무기 만들고 밥 하는 건 전사가 알 바 아니다. 씻기기만 하면 되지' 하며 궁색하게 스스로를 감싸 본다. 아내는 '으이그 니가 그렇지' 하며 내 뒤치다꺼리를 해주고는 목욕시키는 내 옆에 서서 팔짱을 끼고 코칭(배 놔라 감 놔라)을 해준다. 어색했지만 첫째를 씻기던 기억이 나서 금세 목욕을 끝냈다. 태연히 전사 타령을 하며 실수를 허허 웃어넘기고 목욕도 잘 시켰지만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애만 물에 집어넣으려던 내 모습에 스스로 생각이 많아졌다.

육아휴직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긴 고민 끝에 나온 생각이 아니었다. 군대도 갔다 왔고 첫째도 키웠는데 둘째쯤이야, 하는 기합이나 의욕 또는 안일한 마음으로 시작한 휴직. 하지만 이대로라면 나는 아이를 잘 키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건 아니다. 원래 남자는 섬세하지 못하잖아? 하고 넘어갈 것 같으면 육아휴직은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엄마보다 더 꼼꼼하게 아이를 챙길 수 없다 하더라도 엄마를 뛰어넘겠다는 각오로 덤벼야 한다. 막상 휴직해서 며칠 육아를 전담해보니 '라떼파파' 하며 유모차 끌고 공원에서 산책하는 그림과는 정말 많이 달랐다. 애 키우는 현실은 라떼는 개뿔 하루 세 번이나 돌아오는 끼니 중 한 번이라도 밥알 씹어 넘길 정신이나 남아있으면 그날 하루는 인간답게 보냈구나, 싶은 그런 것이었다. 솔직히 화가 날 정도였다. 라테 파파라는 고귀한 한량이랄까, 여유로운 이미지를 만들법한 단어를 차용하여 아빠의 휴직을 권장하는 세태에.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겪은 육아휴직자의 일상은 그것과 많이 달랐고 마음가짐은 더 달라야 했다. 라떼파파라니. 라떼나 들고 유모차 휘날리며 공원에서 히히덕거리는 일은 북유럽산 억 소리 나는 고오급 세단같이 멀리 있는 일인 것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걸까. 내가 육아에 소질이 없어서 그런 걸까. 나만 이렇게 라떼파파라는 말이 억울한 걸까. 애시당초 준비된 부모로 태어나는 인간이 어디에 있으며 아이에게 헌신하기 위해 태어난 부모가 또 어디에 있을까. '경력직 같은 신입' 같은 소리로 느껴졌다. 망할 라떼파파.


이후 나는 오전마다 첫째와 체험활동을 빙자한 집 밖에서 니나노를 담당했고 내가 나간 사이 아내가 둘째의 목욕과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정리되어 둘째를 내가 씻길 일은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그날 육아 전사의 처참한 패배는 나의 머릿속 깊이 자리 잡아 율곡의 자경문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라떼파파 보다는 육아 전사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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