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아빠 오늘부터 회사 안 간다
2. 복선
몸조리를 걱정하는 아내에게 호기롭게 원하는 대로 조리원에 있다가 오라고 말했지만 긴장이 되었다. 아내는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아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간 입원을, 조리원에서 또 2주를 더 있다가 오기로 했다. 3주라니. 이 녀석과 단 둘이 3주라니. 흔쾌히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진도 8.7 이상의 지진을 때려 맞은 동공을 숨기느라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다. 휴직도 하기로 한 마당에 3주간의 첫째와의 동거를 겁내 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긴장이 될 때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땡실한 계획이다. 알찬 계획표와 함께 빈틈없는 3주를 준비해 보기로 했다.
알찬 계획을 짜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고려해야 할 사항도 많았고 내가 아이에 대해 모르는 부분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맑은 날은 무엇을 할지 비 오는 날은 또 무엇을 할지 오전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오후에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인지 너무 더울 땐 어떤 실내 활동을 할 수 있는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끝에 대충 이런 계획을 세웠다.
집 주변에 아이와 함께 갈만한 곳과 내 비루한 재주를 총동원하여 아이와 함께 할 만한 활동을 정리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별로 할 일이 없어서 난감했다. 재주가 모자라면 파이팅으로 떼우자 싶어 큰 맘먹고 아이와 함께 입을 유니폼도 제작했다. 일평생 응원하고 있는 야구팀의 유니폼에 아이의 이름을 새기고 내겐 아이 이름에 '아빠' 두 글자를 붙여 우리만의 팀복을 맞추었다. 어렸을 때부터 숙원사업이었던 일을 완료하니 아이와 그 어떤 일도 함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과 아이를 향한 애정이 마구 솟아올랐다.
이렇게 대충 준비를 마치고 둘째를 만나는 날이 되었다. 첫째 낳을 때엔 병원에 오라는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하염없이 기다리며 초조함을 극한으로 느끼는 괴로움을 겪었던 터라 이번에는 병원에 도착하라고 한 시간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째 엄빠의 여유랄까. 최대한 밍기적거리며 도착한 병원에는 이미 아이 몇 명은 벌써 태어났고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길지 않은 대기 후 둘째를 만날 수 있었다. 감격적인 순간을 보낸 뒤 파김치가 된 아내와는 반대로 별로 할 일이 없는 나는 아내의 간호를 위해 병실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약간 설레기까지 했다. 첫째는 부모님께서 봐주실 테고 둘째는 신생아실에 있다. 오늘은 고생한 아내와 오랜만에 아이 없이 단 둘이 오붓하게 얘기도 나누고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겠지. 첫째 탄생 이후로 단둘이 보내는 밤은 처음이다.
달콤한 잡생각에 빠져있던 그때, 집에서 전화가 왔다. 하루 종일 할머니 할아버지와 잘 놀던 아이가 밤잠을 재우려 하자 엄마 아빠를 찾으며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는 것... 어르고 달래서 겨우 재웠는데 잠시 자는 듯하더니 다시 깨서 감당이 안될 정도로 울고 있다는 것이었다. 많이 난감했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 상황이라 지금 집에 가면 아내는 혼자 오늘 밤을 보내야 한다. 다 큰 어른이 혼자 자는 게 무슨 대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제왕절개를 하고 처음 맞는 밤은 혼자서는 보내기 힘든 시간임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아내는 자꾸 집에 가라고 하고 집에서는 안 오냐고 전화가 오고... 식은땀을 흘리며 우짜지 우짜지 하다가 결국 주차장에 내려가서 차에 앉았는데 다시 집에서 전화가 왔다. 애 자니까 며느리 잘 돌봐주라고.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도 같이 풀려버렸다. 오붓한 밤은 무슨. 터벅터벅 병실로 돌아와 아내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그 길로 불 끄고 일찍 잤더랬다. 아, 난 몰랐었네. 이것이 앞으로의 3주가 어떻게 흘러갈지 살짝 맛 보여준 순간이었음을, 운명이란 작가가 스리슬쩍 매설한 복선이었음을 진정 난 몰랐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