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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Aug 25. 2022

리더의 자질 중 하나는 정확한 업무지시이다.

1인으로 창업 준비부터, 운영, 폐업까지 3의 세월을 혼자 보냈다. 창업으로 생계가 어려워 창업내내 투잡을 해왔지만 단순 업무로 했기에 일에 대한 서운한 점이 있더라도 금방 잊어버렸다. 어차피 아르바이트이니까 마음 주지 말고, 본업에 집중하는   중요하다는 생각에 본업에 집중하니, 아르바이트의 서운함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본업이  중요했다. 다만 힘들었던 점은 투잡을 했지만 돈은 모이지 않았고, 겨우 한달살이 인생을 살았던  고단함과 불안감이었다. 인생이 고되고 힘들고 팍팍했다. 불안정한 수입은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고, 밤잠을  이루게 했다.


진짜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열심히 산다고 꼭 좋은 삶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인 창업자로 어쨌든 버티고 버텨보려 했지만 나는 처참하게 망했다. 다행히 빚을 지지 않았다는 것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때마침 수입이 없을 때 쌀을 삼촌이 보내왔다.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로 정부지원금이 나와 쌀을 샀다. 입술 주변에 어릴 때부터 조금 큰 점이 있어 먹을 복은 있다고 어른들이 말하더니, 정말 힘들 때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 신기했다. 종종 뉴스에서 힘든 사람들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 사회구조가 열심히 산다고, 부단이 노력한다고,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생각보다 복지의 사각지대도 많다는 것을 1인 창업자로 살면서 더욱 느끼게 되었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투잡 생활을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조직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원서를 냈지만 사기업은 날 찾아주지 않았다. 나이 많은 나를 누가 찾아주겠는가? 그래서 결국 업무 스타일상 공무원이나 공기업보다 사기업이 잘 맞는 스타일인데임에도, 어쩔 수 없이 공기업에 도전해보기로 결정하고, 20년 만에 공부했다. 머리는 안 돌아가고, 엉덩이는 아프고 죽을 맛이었지만, 하루 8시간 이상을 책상에서 공부했다. 간혹 시험을 치러가면 나만 머리가 하얀 것 같아 위축되었다. 공기업 자격조건을 갖추기 위해 자격증을 공부하느라 정작 본시험을 제대로 공부를 못해,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을 알면서도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2016년부터 엄마와 같이 살면서 가장이라는 어깨가 나를 짓눌렀고, 더 이상 공부할 여건이 안돼, 정규직이 아니더라도 나이를 안 볼 것 같은 곳은 원서를 넣었다. 다행히 계약직으로 일자리를 구했다.


예전 연봉에서 턱없이 낮아졌지만 투잡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히 다니고 있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분야이고,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서 일을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약간의 연관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짧은 기간 나는 바로 실무에 투입돼 일하고 있다. 업무 스타일에 적응하려고 하고 있지만 간혹 좀 너무 절차가 많은 곳이구나 싶어 좀 지칠 때가 있다. 간단하게 진행할 일을 몇 단계나 거친다. 나는 지금, 옛날처럼 회사에 열정을 쏟고 싶지 않다. 난 정규직도 아니고, 계약직이고, 계약기간 완료 후 다른 방향을 모색해야 하니까. 그리고 난 가장이다. 그러니 고민할 게 많다.


감사히 다니려고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짜증이 난다.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급박하게 돌아가는 일을 맡았다. 기존 관행으로 하던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서 현재의 시점으로 바꿔 문서를 작성했다. 리더라는 사람이 처음부터 명확히 업무지시를 안 내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 결국 혼자 폭발해버렸다. 퇴근 이후에 말이다.


리더라는 사람에게 처음 근무한 날부터 2-3주 정도는 질문을 자세히 하려고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짧거나 답변하기 귀찮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업무지시를 듣고, 간단한 질문만 하고 확인한 뒤 기존에 진행했던 사람의 자료를 찾아보고, 다른 직원에게 물어가면서 기존 방식 데로 진행했다. 그러나 항상 그 이상을 원했다. 그래서 오늘 지쳤다. 몇 번 반복되니 조금 지친다. 처음부터 말해줬으면 이런 헛고생은 안 해도 되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니 슬슬 짜증이 밀려온다.


감사히 다니고, 적당히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오로지 나의 생계를 위해 다니려는 마음이라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하는데, 정확하지 않는 지시가 반복되니 짜증이 밀려온다. 오래전 나의 열정이라면 남아서 끝까지 일할 사람이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살아왔지만 나의 현재는 결과론적으로 보상받지 못한 삶이고, 도태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굳이 나의 몸과 정신을 갉아먹으면서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하는데 오늘은 리더라는 사람의 두리뭉실한 지시 때문에 글을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


어찌 생각해보면, 리더라는 사람이 자신도 정확히 어떻게 지시할 줄 몰라 그런 지시를 내릴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이미 어떻게 진행할지 정해놓고, 나를 테스트해볼 마음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만약 그렇다면 진짜 리더로서 자질이 없다. 2개월도 안된 사람이 어찌 리더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끼리 함께 오래 살아도 의사소통이 어려운데, 생판 남과 일하는데 어떻게 한 문장 아니 두문장으로 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고 일할 수 있단 말인가.


2개월도 안 된 나는 기존에 하던 그대로 문서를 사용했지만 번번이 더 자세히 문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애초에 그럴 생각이면 기존 자료에서 무엇을 더 상세히 다루고 싶은 지 명확히 지시를 해야 한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왔다고 몇 번을 말하지 않았던가. 리더라는 사람은 지시할 때, 좀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노력 좀 했으면 한다. 본인도 피곤하지 않을까.


집에 오면 일을 까먹고, 다른 것을 하면 잘 지내고 있었는데, 같은 일이 반복되는 오늘 폭발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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