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항아리 Aug 29. 2022

짝사랑, 그만두고 싶어요.

짝사랑을 많이 했던 나는 짝사랑했던 상대에게 용기를 내 표현했다. 결국 표현을 한 후 친구로 지내든가 아니면 그저 아는 선배로 지냈다. 이성으로서의 매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다. 사회생활 대부분이 남성 분야에서 일을 했는데도 내 또래 하고는 잘 친해지지 못했다. 무엇인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나랑 친한 대부분의 사회 지인들은 나와 10살 이상 차이가 난다. 지금도 여전히 이따금 연락하는 사회 지인들의 나이는 나보다 열 살 정도 위이다.


오래전 식품회사에서 내가 일했던 업무는 남성적인 분야로 전국에서 여성은 나 혼자뿐이라 내 또래들과 친해지고 싶어 주도적으로 전국에 있는 내 나이 또래 회사 동료들을 천안의 한 리조트에 모이게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저 모임을 진행한 단순 진행자가 되었을 뿐이었다. 왜 내 또래 친구들과 친해지지 못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여전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거니와 사는 게 바빴고, 나만 살기에도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이성만 쫓을 정도로 크게 관심이 없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나도 가끔 이성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대학 시절,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기 싫었던 나의 태도와 독립심 때문에 나는 같은 팀내에서 따뜻한 위로나 격려를 받지 못했다. 일과를 마치고 조별로 텐트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때 어김없이 나의 단점으로부터 대화가 시작돼 나의 단점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일이 반복되니 지치고, 외롭고, 우울했다. 당시 같은 조 사람들이 싫었다. 그래도 끝까지 완주해야겠다는 나의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나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국토대장정 행사를 이끄는 한 사람이 그 마음을 이해해주는 말을 중간중간해줘서 마음이 동요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때부터 그 친구에게 마음이 갔고, 나의 짝사랑은 시작되었다.


같은 학교지만 다른 과라 정확한 정보를 몰랐다. 군대에 가지 않았던 그 친구가 취업했다는 소식에 나는 넥타이 선물을 발송하기 위해 교내 우체국으로 향했다. 우편물을 다 부치고 발길을 돌리려 할 때, 그 친구의 이름을 대면서 그 친구의 여자 친구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우체국 안에 있어 멈칫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엄청 바보가 된 것 같아 그 자리에서 망부석이 되어 버렸다. 그간 그 친구는 나와 문자를 하면서 나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만약 여자 친구가 있었다고 그 친구가 말했다면 나는 간혹 보내던 문자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양심 없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 녀석은 온 가족이 미국 이민을 갈 때서야 여자 친구하고 헤어지고 미국으로 이민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지 싶어 조금 웃기기도 서글프기도 했다. 그러나 짝사랑은 한쪽이 늘 지는 편, 미국에 간 한동안도 나는 그에게 느끼는 짝사랑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그것도 잊혔다.


그리고 또 다른 짝사랑을 이야기하자면 그 짝사랑은 착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늦은 밤이면 오던 문자 메시지에 나는 계속 답장했고, 가끔 그의 어머니가 '장가가라'라고 말을 한다거나, '나 소개팅하러 갈까'라는 말에 착각이 시작되었다. 굳이 나에게 이야기 안 해줘도 되는 말을 나에게 해주니, 사랑에 미숙한 나는 착각에 착각을 거듭했다. 어떤 것이 마음을 보내는 신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만의 착각으로 나는 마음이 키웠고, 결국 나중에는 그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나를 그저 후배라며 말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고백하는 데 실패했다.


상대방의 몸짓하나, 단어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짝사랑이 절대 쉽지 않다. 상대방은 아무런 의미 없이 던진 말에 짝사랑하는 사람은 기대를 품고, 환상을 좇는다. 그저 후배로만 본다는 그의 말에 나는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의 자존심에서 살짝 금이 갔으니까. 그랬더니 왜 연락하지 않느냐는 연락이 왔다. 그 말에 짝사랑은 언제나 진다. 그렇게 겉으로는 마음을 접는 척하며 그와 계속 연락했다. 연락이 끊어졌다가 이어졌다가 결국 2016년 완전히 끊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마음을 접지 못하고 있다. 전화번호도 여러 번 삭제했다가 등록했다가를 반복했다. 몇 년간 문자나 연락은 용기 나지 않았다. 그러나 작년부터 생각나면 보낸다. 그는 내 문자를 보지 않는 듯했다. '그는 나를 완전히 잊었구나!', '난 뭐 그저 그런 후배였으니까!'라는 생각이 드는데도 잊지 못한다. 가끔 미치게 그릴 울 때가 있다. 그런데 요즘 드라마 배우 중 그와 닮은 친구가 스크린 통해 나오면서 부쩍 그리워하는 횟수도 늘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지 않는 것 같아 같은 내용을 카톡으로도 한 번 더 보냈다. 드디어 그가 카톡을 읽었다. 카톡을 읽으니 나를 차단하지 않았구나! 그저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예전에 카톡을 보냈을 때 ‘읽음’ 표시가 없길래 나를 차단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해 문자를 보냈다. 그러다가 어제는 용기 내 문자와 카톡을 동시에 보냈는데 나의 카톡 메시지를 읽었다. 그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 두려웠다. “다시는 카톡 보내지 마”라는 답장이 올까 봐 두려웠다. 움츠러들고, 작아지는 내가 보였다.


그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결혼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도 나도 이젠 적잖은 나이가 되어있는데, 그의 소식이 궁금하다. 그저 편안하게 얼굴 한번 보면서 따뜻한 커피 한잔 나누고 싶은데 그것 역시 욕심이겠지 싶다. 20살 초반에 알았으니 이젠 세월도 이십 년이 훌쩍 넘었는데 사뭇 그의 삶이 궁금하다.


이러다가 혼자 살 것 같지만 문득 죽기 전에 한 번은 내 옆에 누군가와 함께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생각도 나에게 과분한 꿈이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살아 남아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