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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May 22. 2019

삶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2017년 심리적 압박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나는 직장인의 삶이 아닌 자유로운 삶으로 돌아왔다. 서른 초반과 서른 중반사이 늦은 사춘기를 맞아, 직업이란 화두로 엄청난 내적 갈등을 겪었다. 결국 내 길을 걷겠다며 사표를 내고 당당히 직장을 나왔다. 그러나 그 결심은 보기 좋게 일년이 된 시점에서 찌그러졌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012년, 당시 거주하는 조그마한 원룸의 전셋집이 날아갈뻔한 일이 터졌고, 그와 동시에 엄마가 살고 있는 집도 집 문제로 시끄러운 상황들이 일어났다. 그전부터 생활비가 빠듯해 원서를 쓰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않았다. 이런저런 집 문제가 나뿐만 아니라 엄마에게서도 일어나니 결국 버티지 못하고 나의 길을 가겠다는 결심은 접어야만 했다. 당장의 끼니를 걱정해야 했기에 나의 길을 가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내 길을 가겠다는 결심을 포기한 뒤, 열심히 구직활동을 했지만 쉽사리 일자리를 구하지는 못했다. 수많은 서류 탈락은 물론 면접 탈락을 겪었다. 대학 졸업 당시에도 겪은 일이지만 익숙지 않았다. 이미 경험을 한터라 면역력이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몸의 세포는 그 경험에서 느꼈던 상처와 고통을 고스란히 잃어버린 것이다. 몇 년이 흐른 뒤 서류 탈락, 면접 탈락의 결과를 받아들일 때마다 처음 겪은 상처와 고통처럼 느껴졌다. 하루에도 열두 번, 마음은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갔다.


수많은 도전 속 어렵사리 재취업의 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 자리를 잡는데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공백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시간이 또 찾아와 나는 내 삶을 부정했다. 늘 남보다 느린 삶, 실패한 삶에 극도의 좌절감으로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사고를 했다. 주변의 사람 몇 명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나의 부정적인 기운, 말투, 행동이 모두 전해졌으리라.


그렇게 이 세상 모든 어둠과 짐을 혼자 이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이 세상에 덩그러니 버려진 느낌과 마주하며 사투를 벌어야 했다. 어둡고 긴 터널을 혼자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스스로 외로움과 고독감, 패배감에 깊게 젖어 있었다.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생활반경, 앞으로의 행복은 없을 듯한 두려움과 막막함이 매일매일 나의 공간을 에워쌓다. 하지만 시간은 더디더라도 흘러간다. 그리고 조금씩 변화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전혀 다른 산업분야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어렵게 다시 찾은 일터에서 열심히 일을 했지만 나는 적응하지 못했다. 그곳은 라인 싸움이 치열한 현장이었다. 그전까지 다행이라고 불러야 하나 정치 즉 라인 싸움이 없는 회사에서 일했다. 나의 성격에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그간의 경험에 그런 일이 없다보니, 매일매일 충격이었다. 정치를 잘하지 못하는 나는 타업종에 입사한 사람으로 정치싸움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안주거리가 되었고, 귀찮고 잘 해결되지 않는 일은 나의 일로 되돌아왔다. 불평, 불만이 있어도 꾸역꾸역 일을 해나갈 수 밖에 없었다. 과거의 좋은 생각으로 뛰쳐나갔지만, 결국 경제적 고통으로 다시 돌아온 상황이 상기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2017년 말 지금까지의 직장생활을 정리해야만 했다. 포기한 나에게 스스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잃어버렸다. 직장생활 정리 후 이내 다시 원서를 내야만 했다. 엄마를 시골에서 모셔와 함께 살기 시작한지 얼마 안 돼 가장이라는 무게가 커져,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했다. 점점 찾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는 현실을 알아채 갔다.


결국 직장에 들어가는 삶을 희망해 계속 도전하다가는 언제 선택받을지 모를 상황을 무작정 기다리며, 상처 받는 일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참에 생각을 바꿔 새로운 삶으로 진입해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결심하게 되었다. 2011년 나만의 길을 가겠다며 뛰쳐나와 결국 이루지 못한 것을 ‘지금 하라’라고 누군가 콕콕 찍어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런 결심을 했음에도 금방 구직활동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결국 이듬 해 8월이 되서야 조직으로 돌아가는 삶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한 뒤, 지금은 새로운 일에 도전해 살아가고 있지만 이 일 역시 녹록하지 않다. 하루 10시간 이상을 매달리고 있지만 경제적 수입이 거의 제로인 상태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진행하고 있다. 어떤 일이든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배워나가고 있다.


이 아르바이트라는 것을 구한 것도 진짜 어렵다. 작년에는 4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려 아르바이트를 구했었다. 그렇게 40대는 아르바이트도, 일자리도 찾지 않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았다. 인생이 내가 마음먹은데로 흘러가면 좋지만 살아보니 마음먹은데로 되지 않는게 인생이다.


참으로 인생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과 상관없이 흘러간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그 길에 서 있을 것이라 믿으며 애써 노력하며 살고 있다. 옛날의 작은 성공, 성취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다시 마음 다 잡는다.


이십 대 초반, 국토대장정을 하고 싶어 박카스에 지원했지만 연속 떨어지는 결과를 마주했을 때 이제는 나는 국토대장정은 못하나부다 포기하던 순간에 개교 50주년 행사로 국토대장정을 한다는 굿뉴스가 들러왔고, 난 615km의 국토대장정을 완주했다. 벌써 20년 전이 일이 되어버렸구나. 그렇게 국토대장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지워버리지 않고 머릿속에 늘 염두해두었더니 이뤄낸 것처럼, 지금 내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보련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원하는 삶을 추구하고, 이뤄갈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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