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에 산다. 내 방 옆으로 보이는 다른 동 건물 3층에 할머니 혼자 사신다. 가끔 할머니와 마주친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와 페인트를 구매해 현관문, 베란다 창문을 새롭게 단장했다. 초록색 창문을 회색으로 단장하려던 베란다 창문 건너편이 할머니 안방이다.
페인트칠할 때 건너편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는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문을 슬그머니 열고, 밖의 상황을 가만히 지켜본다. 할머니 자신만의 취미 같았다. 아마 나의 페인트칠하는 소리도 할머니를 자극했던 것이 분명하다. 할머니는 나의 페인트 칠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응원을 보내셨다.
베란다 밖으로 떨어질까 봐 덜덜 떨리고, 무섭고, 초조했지만 할머니의 응원으로 끝까지 페인트칠을 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의 안방을 바라보기 시작했던 것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할머니 댁은 아들, 며느리, 손자들이 함께 어울려 떠드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그 소리에 나까지 웃음이 지어진다. 어느 날인가는 며느리가 할머니에게 아들 흉보기 시작했다. 옆에서 아들은 ‘그만 좀 해라’라고 말리지만 며느리는 그만둘 생각조차 없었다. ‘혹시 싸움 나는 것 아니야’ 라며 조마조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할머니는 며느리와 맞장구를 치며, 아들이 술만 먹으면 자기한테 전화한다면서 며느리 고발 건에 더해 이야기를 꺼내신다. 할머니는 대처를 보면서 ‘참 현명한 어른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집은 며느리도 할머니 댁을 자주 찾아오는구나 싶었다. 어떨 때는 아들과 손자만 올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며느리만 올 때도 있다. 보통 할머니 댁에 오자마자, 할머니를 모시고 나간다. 외식하고 돌아오는 것 같다. 그리고 한참을 서로 웃고, 떠들다가 돌아간다. 혼자 사시지만 자주 찾아오는 자식들을 보면서 할머니가 ‘자식 농사는 참 잘 지으셨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할머니가 한참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 엄마보다 연세가 많아 불이 켜져야 할 시간에 안 켜지니 은근슬쩍 걱정되었다. 하루 이틀이면 돌아오겠거니 생각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 불이 켜지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병원에 입원하셨나 아니면 요양병원으로 가셨나 별걱정을 다 했다. 옆집 사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걱정되는 것도 희한한 일이다.
시골에서 동네 어르신들이 우리 집 밥상 숟가락까지 참견하는 것은 물론 걱정까지 하는 것이 그렇게 싫어한 내가, 할머니를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 나쁘지 않다.
내가 걱정하는 입장이라서 그럴까. 정작 할머니는 자신을 걱정하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 자식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웅성웅성하는 소리에서 귀를 기울여, 할머니를 찾았으나 할머니 목소리는 없었다. 걱정은 더 되기 시작했다. 혹시 돌아가셨나 그래서 이렇게 다시 자식들이 집 정리하러 할머니 집으로 왔나 별 걱정이 다 됐다. 며칠이 지나자 할머니가 드디어 돌아왔다.
걱정을 안겼던 할머니를 보자 반가웠다. 어디 갔다 오셨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다. 오히려 아는 척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할머니의 방이 원래 할머니 시계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이곳으로 이사 오고 옆집 할머니를 걱정하기는 처음이다.
시골에서는 흔한 일이었지만, 시골을 떠나 십 년이 훨씬 넘게 도시에서 혼자 살면서 옆집 걱정을 한다는 게 부담스럽고, 무서운 일이 돼 버린 나였다. 옆집에 누가 살고 있고, 어떤 일을 하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전혀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가 다시 이웃을 걱정하는 감정을 가진 것이 좋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걱정하는 딱 그 정도면 됐다. 지금 사는 곳에 탐탁지 않은 이웃도 있지만, 그런 이웃이 내 옆 동의 같은 층의 할머니는 아니라 행복하다.
흰머리 가득한 파마머리며, 난닝구 입은 모습에서 중학교 3학년 때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외적인 모습이 외할머니와 비슷해 할머니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옆집 할머니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그들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일도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