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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Sep 06. 2022

나는 계약직입니다.

퇴근 시간을 훌쩍 넘었다. 내일 일해도 되는데 뭘 하고 있겠다고 앉아있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예전의 습성이 남아있다. 나는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것마저 감사히 일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자영업을 하며 끝까지 자립하지 못하고 처절하게 망했으니까. 빚 없이 했다는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강단은 있지만 큰 결정을 내릴 만큼 결단력이 없고, 손해를 두려워해 소소한 것에 신경 썼던 나의 행동을 보면서 나는 제품을 파는 사업가가 될 수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영업에 실패하고 과연 나이 많은 내가 취업이 될까 걱정의 하루를 보냈던 나에게 지금의 계약직 일자리가 소중하다. 자영업 하며 불규칙한 수입에 노심초사했다. 수익이 발생할 수 있는 날은 올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 늘 마음은 불안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다들 잘도 성공하는데 나는 더뎌도 너무 더뎠다.


그런 불안한 삶과 비교해 지금의 일은 그나마 다음 달 수입에 대한 불안을 겪지 않아도 되니 감사해 하며 다녀야 한다. 그런데 사람인지라 가끔은 짜증이 난다. 열심히 살았는데 이런 욕을 먹어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그동안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보다 불필요한 과정과 업무 절차가 상당히 많다. 효율적이지 못하다. 덧붙여 소위 엘리트라는 의식 강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니 이따금 불편하다. 그들이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뉘앙스라는 것이 있다. 나는 소위 우리나라에 잘난 대학교, 우수한 과 출신 사람들과 많이 일 해봤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과도 많이 일해봤다. 그런 경험들 때문인가, 나는 소위 본인 스스로 강한 엘리트 의식을 가진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 경험상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더 창의적이고 새로울 때가 있다. 때론 생각지도 못한 혁신적인 일을 생각해낸다. 그래서 자신들의 우월감을 말하면서 조금씩 드러내는 사람들이 싫다.


고등학교 성적으로 평생을 가는 우리나라 사회의 모습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예전에 가난으로 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던 어느 아저씨가 마흔이 넘어 시작한 공부에서 천재성을 보였다. 러시아에서 계속 그 아저씨를 영입하려고 애쓴다는 기사가 생각난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나는 사람마다 공부에 관심 두는 시기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회는 고등학교 공부의 결과로 들어간 대학이 한 사람의 전체 인생을 관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바뀌어야 하는데 과연 바뀌는 날이 과연 우리에게 찾아올까.


어쨌거나 자영업을 하면서 불규칙한 수입이 나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었고, 평소 다른 사람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 정도가 큰 사람으로서 더더욱 불안이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은 적은 돈이라도 꼬박꼬박 나오니 감사해야 하며,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실질로 감사해하고 있다.


그렇다고 쳐도 야근까지 하면서 열심히 살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난 계약직이다. 그런데 빨리 일 처리하고 싶은 예전에 습성 때문에 늦었다. 과거에 열심히 일한다고 일이 잘 풀리거나, 승진을 빨리한다거나, 부자가 된다거나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망각해버렸다. 사무실에 혼자 남아 새벽녘에 불을 끊고 퇴근했던 그 당시처럼 인생을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머리로 알지만 행동으로까지는 옮겨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바뀐 머리의 회로가 나의 몸 구석구석 흘러야 한다. 그래야 원래의 습성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머릿속에 바뀐 생각의 전기를 계속해 흐르게 해야 한다.



자영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정규직으로만 일했고, 계약직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계약직의 마음을 100퍼센트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가 계약직 채용을 점점 당당히 하고, 당연시하는 모습에 구역질이 났었다. 그것도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더욱 정부가 싫었다. 있는 사람들 위주의 정책이 싫었다. 종종 정부에서 3개월, 4개월, 5개월, 10개월로 구인 광고하는 것을 보는데, 과연 이런 부분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일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정부가 주도해 계약직을 양성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


지금의 계약직 고용형태는 알바로 했던 단기 계약직과는 다르다. 아마도 예전에 함께 일했던 계약직 직원들의 고용형태가 지금 내가 고용돼 일하는 형태의 모습과 유사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예전의 계약직 친구들의 마음을 다는 이해할 수 없지만 조금은 이해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의 방향에서 나는 계약직이라는 삶도 살고 있다. 삶은 참 예측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으면서 젊은 날 내가 원하는 데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은 사라졌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감정은 이미 어느 누군가가 겪었을 것이고, 앞으로 어느 누군가가 겪을 것이다. 오래전 계약직 친구들을 이해할 수 있어 되돌아볼 수 시간이지만 앞으로 이런 고용형태가 우리 사회에서 많이 사라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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