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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Sep 11. 2022

일단 처음을 뛰어넘으면 된다.

나는 왼손잡이다. 왼손잡이라 일상생활에서 불편할 때가 있다. 사람들과 식사하러 음식점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오른손잡이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좌석에 눈이 먼저 간다. 그리고 앉을자리를 먼저 생각한다. 그런데 머릿속으로 앉을자리를 다 그려 넣었는데 누군가 내가 생각했던 자리에 앉으면 속으로 당황한다. 방문의 손잡이, 가위의 손잡이 구멍 등 일상에서 불편한 점들이 종종 있다.


어릴 적 왼손으로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하면 밥상머리에 앉지 못하도록 교육받아 초등학교 때만 해도 나는 밥을 먹기 위해 오른손으로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힘들어도 했다. 그러나 도무지 힘들어 어느 순간부터 혼나도 내가 편한 데로 식사했다.      


그러나 왼손으로 하지 않은 딱 한 가지가 있었으니, 그것은 글씨다. 그러나 오른손으로 글씨를 배웠다 치더라도 힘이 없어서인지 글씨를 몇 줄 쓰다 보면 쓰기 싫어지기 일쑤이고, 글씨의 크기는 물론 삐뚤빼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가지런히, 깔끔히 글씨를 쓰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스무 살 무렵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오토바이와 접촉 사고가 났을 때 오른손을 다쳐 붕대를 감고 며칠 있는 동안 왼손으로 글씨를 썼는데, 왼손잡이 나도 한글은 왼손으로 쓰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한글 쓰기는 아무래도 왼손잡이에게 편하게 할 수 없다. 영어는 받침이 없어 그나마 잘 쓰이는데 한글은 위, 아래, 오른쪽, 왼쪽 왔다 갔다 하니 왼팔의 옷은 연필 흔적이 고스란히 남는다.     


가끔 연예인 중에 왼손잡이들을 자주 보여, 일반 사람들보다 연예인 중에 왜 왼손잡이가 많을까 궁금한 적도 있다. 왼손잡이가 예술적인 부분이 발달하였다고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그 때문인가. 연예인이 아니라 나는 나에 대한 실타래를 풀고 싶어 왼손잡이에 관한 책을 몇 번 읽은 적이 있다.      


책에서 공감이 갔던 것이 여러 개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왼손잡이는 전체를 보기 때문에 오타가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책에 언급돼 깜짝 놀랐다. 나를 자책했던 날들이 많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기억은 말 가로채기이다. 이거 역시 내가 말 가로채는 습관 있어 의기소침했던 날들이 많았는데 책에서 왼손잡이에 대한 특징 중 하나로 설명했다. 제지당하는 경험을 어렸을 때부터 겪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이 제지당할까 봐 남의 말을 잘 가로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도 나를 싫어했던 때에 왼손잡이 책은 도움 되었다.     


내가 왼손잡이라서 중학교 가정 시간에 가정 선생님이자 담임 선생님이 나를 가르치다가 결국에는 포기하셨다. 선생님도 미안해하셨다. 코바늘 뜨기 수업이었다. 선생님 설명을 듣고 다른 아이들은 다들 코바늘을 하고 있는데 나는 전혀 방향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선생님께 손을 들고 도움을 요청해 선생님은 나를 잘 가르치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방향이 달라 포기하셨다. 


성인이 되어 조각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느질 공방을 갔다가도 선생님은 나를 포기했다. 기본적인 홈질, 박음질, 공그르기는 잘하다가 결국 또다시 특이한 바느질에서 손이 멈칫했고, 나는 바로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바느질 공방 선생님도 가르치다가 포기했다. 그렇게 내가 배우고 싶던 복잡한 바느질과 코바늘 뜨기를 영영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직접 뜬 핸드메이드 수세미를 팔아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심이 생겼다. 나는 실을 사러 동대문에 갔고, 코바늘과 기타 뜨개질에 필요한 재료를 사 왔다. 사실 요즘 워낙 유튜브 영상이 잘 되어 있고, 네이버 검색도 잘 돼 있어, 왼손잡이 영상을 기대했건만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한 분의 왼손잡이 영상을 발견하고 여러 번 돌러보고 돌려보며 코바늘 뜨기 성공에 열정을 쏟았다. 결국 밤을 지새웠다. 한동안 실과 코바늘에 매달렸다. 이번에는 꼭 성공하리라 다짐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나를 품어줬던 담임 선생님이자 가정 선생님이었던 선생님도 포기했는데 과연 이번에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끝까지 도전했고, 마침내 방향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몇 시간 만에 수세미 한 개를 코바늘 뜨기로 완성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수백 개의 수세미를 떠 판매까지 했다. 


코바늘 뜨기를 가르치려던 선생님도, 조각보를 배우러 가서 바느질을 가르쳐주려는 선생님도 포기했던 일을 영상을 보면서 배우고 깨우쳤다는 것이다. 될 것이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번만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집념을 가지고 했던 그 행동이 평생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뛰어넘게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오른손 방향으로 나오는 영상도 한참을 보며 왼손잡이 방향으로 바꿔 생각하면서 몇 시간을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새로운 것을 배워나갔다. 나는 수세미에 이어 택배 아저씨를 위한 목도리 뜨기에 참여해 목도리도 뜨개질하였고, 엄마가 산책하러 나갈 때 쓸 물통 주머니도 코바늘 뜨기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집에는 코바늘 뜨기로 완성된 여러 개의 컵 받침이 있다.     


처음을 넘겼더니, 그다음은 더 수월해졌다. 나는 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했으며, 몇 번의 이직으로 의기소침할 뿐만 아니라 인내심과 참을성이 없나 싶어 나 스스로가 나를 실망했고, 나를 한없이 코너로 내몰았었다. 지금도 여전히 불쑥불쑥 불청객이 찾아오지만 한 번도 성공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조차 못했던 코바늘 뜨기에 성공하면서 집중력과 집념으로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배웠고,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 인내심이 있구나. 첫발을 내딛자 또 다른 한 발도 내디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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