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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Sep 22. 2022

마음을 뺏기다니

2015년 원룸의 텔레비전은 중고 브라운관이었다. 퇴근 후 잠깐 시청하거나 주말에 보는 정도라 전원 스위치가 떨어져 나갔는데도 살 생각도 안 하고, 젓가락으로 전원 스위치를 눌러가며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그러다가 2015년 엄마가 지방 병원에서 수술 후 재발이 나 그 해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왔지만 서울대학교 병원에서도 세 번을 수술했다. 그 때 내 원룸 방의 텔레비전도 바꿨다.      


엄마의 눈은 시간을 기다릴 수 없는 상태라 대부분의 환자가 수술 대기만 두 달에서 석 달을 하는데, 엄마는 진료 후 바로 다음 날 입원 그리고 그다음 날 수술을 반복했다. 그렇게 세 번이나 진행되었다. 오래 기다려야 하는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대기도 타지 않고 빠르게 수술했지만 결국 한쪽 눈을 잃었다. 그렇게 그 해 엄마는 나의 좁은 원룸에서 한동안 수술 회복을 위해 머물러 있었다. 눈 수술 후에 한 달을 엎드려 있어야 하는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시골에서 계시게 할 수 없었다. 시골에 계시게 하는 것이 상당히 불편했다.      


좁은 방이지만 응급상황이면 바로 서울대병원으로 갈 수 있는 것이 더 낫겠다 싶었다. 시골에 계시면 분명 쉬지 않고 일할 사람이었고, 그렇게 일하다가 수술한 부위가 또다시 떨어져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을 것이다. 조심하더라도 수술 부위가 잘 떨어져 여러 차례 수술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니 일하면 더 잘 떨어졌을 것이 분명하다.      


원룸에 함께 있을 때, 내가 출근하면 엄마는 그 좁은 원룸에서 온종일 엎드려 있어야 했는데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넓지 않은 방. 리모컨도 없고 전원 스위치는 떨어져 젓가락으로 눌러야 하니, 엎드려 있어야 하는 엄마에게 그보다도 고통스러운 일은 없었을 것이다. 눈도 보이지 않고, 한쪽 눈은 안대로 가리고 있었으니 설명조차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을 것이다. 텔레비전 소리로 하루를 버텨야 하는데 리모컨도 없던 중고 브라운관이 여간 불편했던 모양이다.

 

엄마가 나에게 뭘 사주는 사람이 아닌데 먼저 텔레비전을 구매하라고 돈을 줬다. 엄마도 불편했겠지만 내가 불쌍했나 보다. 원룸에 8년 넘게 사는 동안 신상품인 텔레비전을 처음 구매했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나를 위한 텔레비전을 구매했던 것이다. 그때 구매한 작은 텔레비전을 2022년 9월까지도 계속 사용했다. 해마다 텔레비전 화면이 너무 작다는 생각은 했지만, 나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선뜻 구매하기가 쉽지 않았다. 고장도 나지 않았고, 화면이 작다고 심각할 정도로 불편하지 않았다. 그전에는 더 작은 텔레비전으로도 시청했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도 흑백텔레비전을 사용했었다. 그에 비하면 얼마나 황송한 일인가. 


내가 원룸을 혼자 살기 시작할 때도 이미 많은 가정에서 대형 텔레비전을 갖추고 있었다. 대형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 가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집에 돌아오면 구매하기를 주저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조금 더 큰 화면으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재작년부터는 구매 욕구가 엄청나게 달아올랐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했다.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후순위로 밀려버렸던 텔레비전을 마침내 지난주 토요일에 가로길이 97cm 규격의 제품을 구매했다. 더 큰 텔레비전이 많은 것과 비교하면 크지 않지만, 우리에겐 엄청나게 큰 대형 텔레비전이었다. 내 평생 가로길이 97cm 텔레비전은 처음이다. 첫날은 적응이 안 되었다. 하루 지나니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동물 다큐멘터리, 여행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엄마와 나는 작은 화면으로 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화면에 빨려 들어갔다. 감동했다. 대형 스크린으로 드라마를 보는 것에는 크게 감동스럽지 않지만, 동물 다큐멘터리와 여행 프로그램, EBS를 시청하면서 신세계를 만난 듯 계속 감동의 물결이 일어 계속 중얼거리게 된다. 지금도 계속 감동을 하고 있고,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한다. 오죽 감동하면 그러겠는가. 엄마랑 계속 서로가 느끼는 감동을 이야기한다.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널따랗게 펼쳐진 풍경을 보면 가슴이 펑 뚫린다. 큰 화면으로 보니, 화면에 나온 장면 안에 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형 스크린에 마음을 뺏기다니, 정교하게 촬영한 동물 다큐멘터리를 찾아 꼭 봐야겠다. 화면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동물들과 내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풍경들 때문에 행복을 느끼고 있는 며칠이다. 이런 게 행복인가. 이 텔레비전을 사기 전에도 몇 번을 고민했는데 사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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