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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Sep 23. 2022

누군가를 매료시키는 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덕수궁 돌담길에 공예 마켓이 열렸다. 2022 정동 야행이 9월 23일부터 9월 24일 열리는 데 그 행사 중 하나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매주 걷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오늘도 점심 식사 시간에 서울 시청의 시민청과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주변을 걸었다. 운동할 시간이 없는데 이렇게 점심시간에 걸음으로서 운동을 대신할 수 있어 다행이다. 어제, 오늘 머리가 아팠다. 에너지를 많이 쏟아냈고, 짜증 나는 나의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어제도 나는 점심시간에 천 원을 지불하고 덕수궁을 돌며 그늘에 앉아 나만의 점심시간을 보냈다. 나 혼자 보내는 고요함 속에서 감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덕수궁 주변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아침, 저녁으로 지하철로 향할 때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나무를 바라본다. 은행이 땅 아래로 한창 떨어지고 있다. 은행을 밟을세라 까치발을 들며 걷는다. 가을을 느끼게 해주는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 행운이 매일 찾아온다.


오늘도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집으로 향했다.     


2022 정동 야행 축제의 야외무대를 지나 공예 마켓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솜씨 좋은 사람들의 작품이나 물건을 보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 자연스럽게 발길이 그곳으로 향했고, 가방을 팔고 있는 곳에서 나의 걸음은 멈췄다.      


어깨에 걸치는 에코백을 메고 지하철을 타니,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날 때마다 내 에코백을 치는 바람에 불쑥불쑥 화가 난다. 이런저런 이유로 숄더백을 갖고 싶었기에 다른 공예품보다 더 숄더백을 파는 곳에 눈길이 갔다.      


몇 번을 만지작거리다가 숄더백을 구입했다. 숄더백을 메고 지하철을 타면 가방을 앞으로 위치시킬 수 있으니 사람들과 덜 부딪칠 것이다. 그러면 나의 스트레스도 줄어들 것이다. 가방이 뒤로 있으면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흔들리니 신경이 곤두선다. 사소한 변화로 신경이 날카로움을 줄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 났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예전 같으면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끝까지 해보자.’라는 생각이 강했다. 상대편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데 혼자 적을 만들고 그 적을 이기기 위해 지하철 안에서 머릿속으로 온갖 사투를 벌였던 적이 꽤나 있었다. 이겨보려고 악착같이 자세에 힘을 줬었다.


가방을 사고 지하철로 향하는데 덕수궁 돌담길 벽에 걸려있는 ‘서예’ 글자가 눈에 확 꽂혔다. 무료로 사람들에게 붓글씨를 써주시는 어르신 네 명이 앉아있었다. 어르신이 써주는 붓글씨를 기다리는 이들이 줄지어 있었다.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가니 정성스럽게 써주며 낙관도 찍어주신다. 멋있었다. 나는 창조적인 예술적 행위,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타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수능 대박”이라는 단어를 써주는 할아버지는 손에 힘을 주며, 한 자 한 자 정성을 쏟았다. 글씨체가 힘이 있다. 거친듯하면서도 힘이 넘쳤다. 글자가 밖으로 뚫고 나올 것 같은 힘이었다. 분명 그 친구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것이다. 할아버지의 힘찬 글씨의 힘이 그녀에게 와닿았을 것이다.


나도 그 할아버지에게 붓글씨를 부탁하고 싶었지만, 그 할아버지에게는 이미 여러 명이 서 있었다. 그 옆에 있는 할아버지는 한 학생이 쓰고 돌아간 뒤 기다리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런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다. 할아버지에게로 갔다. 원래 부탁하고 싶었던 할아버지가 내가 부탁할 할아버지가 한자를 많이 안다며 옆에서 말해주셨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이 할아버지에게로 잘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건강을 염원하는 글을 써달라고 하면서 “건강이라는 단어를 써야 할까요?” 물어봤더니 처음에 만수무강으로 말하며 붓을 들으셨다. 그러나 붓끝에서 나온 단어는 만수무강이 아니었다. 잠시 생각하시더니 붓에 강약 조절하며 쓰셨고, 한 글자 마칠 때마다 읽어주시니 “수복강녕(壽福康寧)”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오래 살고 복을 누리며 건강하고 평안함’을 뜻한다고 나와 있었다. 할아버지도 그런 의미로 쓴 것이라고 말해주셨다. 글자에 뿜어져 나오는 힘을 받아 우리 엄마도 건강하고 평안해질 것이라 믿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만난 서예 할아버지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늙어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써주신 글자를 서류 봉투에 잘 넣어 안고 왔다. 잘 보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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