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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Sep 21. 2022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자

요즘 사소한 것에 대해 너무 길게 말하는 사람 몇 명을 보면서 피곤하다. 잠깐 나에게로 와 이야기하면 삼십 초도 걸리지 않을 일을 카톡으로 길게 길게 쓴다. 사람 엿 먹이는 것인가. 자꾸 그러니 피로도가 높아진다. 여러 명이 같이 있는 대화창에서 이야기한다. 배려가 상실된 모습으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카톡창에 “알려줘서 감사하다”라고 대게 말하지만, 기분이 별로다.     


내가 너무 구닥다리인가. 얼굴 보며 영업했고, 얼굴 보며 대화하면서 일하는 것에 익숙한 사회생활을 한터라 지금의 일터가 적응이 안 된다. 직접 가서 물어보려면 내부 카톡과 같은 기능을 사용해 물어봐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참 뭐 같다.      


지난번에 궁금한 사항이 있어 다른 부서에 가서 물어보고, 전화로 담당 부서에 물어보고 있는데 갑자기 나를 상사라는 사람이 불렀다. 다른 부서에 물어보지 말란다. 그러면서 사회생활을 모른다는 식으로 말한다. 십오 년 정도를 사회생활을 한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속으로 난 말한다. 이런 조직도 나도 처음이야. 거기다가 여기가 도서관이냐, 조용히 말하라고 하고. 일터에서 필요한 전반적인 것은 인사부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지만, 내부 부서에서는 오리엔테이션도 없이 일을 시켰고, 일도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고, 한 문장 내지 두 문장으로 일을 설명하면 누가 그것을 이해하는가. 매출 분석해 매출을 올리기 위한 기획을 했던 사람이 전혀 다른 분야에 왔는데 말이다. 인터넷 쇼핑몰 폐업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다니고 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부 부서에서 물어보라고 해서 물어보면 그들도 모른다고 한다. 당연한 것이다. 그전에 했던 방식은 간편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더 복잡해진 방식을 요구하니 답을 못할 수밖에. 몇 명이 그들만의 텃세를 부리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텃세를 부려라하고 있다. 난 당신을 텃새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태도로 그저 내가 먹고 살 생계수단의 일부로 생각하고 다닐 것이다. 열심히 살았던 나에게 그에 대한 보상이 없었고, 굳이 너희들에게 맞출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난 계약직이다. 다만 너희들의 행동에 피로감이 몰려올 뿐이다.


속으로 그리 잘났으면 여기 말고,  천만    있는 전문가들이니  천만    있는 일을 하지 ‘ 왔지하고 시부렁거리면 그만이다. 내부 동료도 몰라 다른 부서에 가서 물어본 것인데, 어처구니없다.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쳐다보면 어쩔 건데 나도 당신이 어처구니없다. 같은 조직에서 다른 부서에 물어보지 말라는 그런 조직이 어디 있노. 그게 상식이라는 식으로 말하면 내가 이해할  알았나 보군. 그간 사기업에서 나의 경험은 협업을 수시로 해야 했고, 긴밀하게 대화를 해야 일이 진행되었단 말일세.   상식은  상사의 상식에서 비상식으로 통할까. 나는 네가 이해되지 않는다. (나이를 모르지만 나와 연령이 비슷한 듯하다.)   


내가 지금껏 다녔던 사기업 하고는 업무 절차나 운영이 다르다. 업무 절차가 많은 것은 이해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안다. 다른 부서는 안 그런 것 같은데 유독 잘난 사람들로 구성된 이 부서의 몇 명 구성원들이 문제인 것 같다.    

 

자신들이 잘났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참 별로다. 배울수록 겸손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멋져 보이던데, 스스로 자신들을 드러내니 그저 하수 같다.     


오늘 내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 중 글자 하나가 오타가 있었다. 그것을 본 어떤 이가 여러 명이 있는 대화방에서 말했다.     


“000 단어가 너무 신경이 쓰여요. ~~~~~”(이외 길게 아는 척을 하면 글을 써놓았다)

“네, 피드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답변했지만 재수 없다. 그저 “000 단어 오타입니다.” 해도 다 알아먹는다.

“000 단어가 너무 신경이 쓰여요.”라는 말을 이어 다른 말까지 길게 늘어트린다. 피곤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그렇게 해서라도 드러내고 싶은 것인가.


얼굴 보고 대화로 하면 끝날 일을, 핸드폰으로 하니 적응도 안 되고, 싫다. 화장실을 가다가 잠깐 나보고 “000 단어 오타가 있던데요.” 말해도 충분할 텐데 말이다. 굳이 대화창에 신경이 쓰인다고 쓰면서까지 말할 필요까지 있는가. 이런 행위들을 소위 몇 명이 하다 보니 좀 피로감이 쌓였다. 그저 그러려니 하지만 그들이 왜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지 모르겠다.     


“별거 아니지만, 000가 이상해 보여요.”

“인스타그램에 적어놓은 링크가 이상해요. 잘못된 것 같아요”      


하면서 대화방에 캡처한 사진을 공유한다. 결국 자신이 잘못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누구를 엿 먹이려는 행동인가. 굳이 캡처까지. 인스타그램 자체의 한계를 내가 어찌 고치리라. 인터넷 쇼핑몰 하면서 폐업해 탈퇴한 상황이라 사용법에 대해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사소한 것까지 대화방에 올리는 몇 명을 보면서 “참 피곤한 스타일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속으로 생각한다. 그리 잘났으면 월급도 적게 주고, 대부분이 비정규직인데 왜 하필이면 더 벌 수 있는 충분한 능력도 있는 자들이 지금의 일터에 와서 일하는지 의문스럽다. 자신이 잘났음을 드러내고 인정받으려면 오히려 스스로 잘났다고 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먼저 보이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사소한 것을 카톡 대화방에서 지적하고 캡처할 것이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얼굴 보고 대화하고, 풀며 일했던 나와는 진짜 맞지 않다. 매일 전쟁터 같은 곳에서 일하다가 도서관 같은 분위기를 추구하는 이곳이 적응이 안 된다. 그래도 적응하고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에 감사하며 지내보련다. 무시할 것은 무시하고, 대학교를 졸업한 지 한침이나 되었는데도 자신의 전공을 여전히 점심시간 이야기 주제로 이야기하는 참 못난 인간들이지만 내가 먼저 먹고살아야 하니 무뎌지는 수밖에.     


그럼에도 한마디 해야겠다면 “그리 잘났으면 월 천만 원 이상 벌 수 있는 당신들의 능력을 이곳에서 펼치지 않는 편이 나아 보인다”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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