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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Sep 19. 2022

옆 동 아빠의 장난치는 소리

동대문에 맡긴 이불 커버가 오늘 택배로 왔다. 일 끝나고 돌아와 보니, 수선이 잘 되어 있었다. 늦은 시간이지만 나는 이불을 수선해준 사장님에게 전화해 고마움을 전했다. 커피 쿠폰 선물도 드렸다. 좋아하시며 언제 동대문에 놀러 오라고 한다. 그러면서 내 목소리가 편안하다고 칭찬해준다.


나는 내 목소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남자 같은 목소리에, 목소리 톤도 별로 안 좋고, 내 목소리를 직접 녹음해서 들은 적이 있었는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목청도 커 목소리로 인해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경험들로 더더욱 내 목소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런데 편안하다고 칭찬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불 커버가 잘 수선돼 기분이 좋아진 탓일까. 아니면 수선 사장님의 목소리 칭찬 때문일까. 옆집에 아빠와 딸의 장난치는 소리가 오늘따라 유독 예쁘게 들려온다. 우리가 이사 오고 그다음 해인가 옆 동의 아이가 태어났다. 옆 동은 대부분 할머니가 살고 있다. 그러니 신기할 수밖에. 아이의 울음소리에 귀를 쫑긋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울음소리가 날 때 행복했다. 나는 아이를 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기분이 밝아지고 좋아진다. 그러니 옆집 아이가 아기였을 때 우는 울음소리가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스트레스 받기보다 어디가 아픈가, 배고픈가를 먼저 걱정했다. 그렇게 울던 아이가 가끔 조잘조잘거리며 밖에서 엄마 혹은 아빠하고 걷는 소리가 나면 신기하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말을 잘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그저 신기하다. 벌써 여섯 살이 되었을 것이다.     


평소 그다지 아이의 소리가 크게 나지 않는데, 오늘따라 아빠와 아이가 장난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의 장난에 아빠가 맞장구를 치는 듯한 소리이다. 이 아이는 커서 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흐뭇할 것이다. 아이와는 반대로 나는 아빠와의 추억은 없다. 일찍 돌아가셔서 그저 사진으로만 아빠를 만났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아빠와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들, 어린아이들이 아빠의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다.


예전에 지리산 십리벚꽃길을 보러 갔을 때 섬진강 주변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와 아이가 섬진강 물에 몸을 살짝 담그고 함께 노는 모습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워 보였다. 사진기를 꺼내 들고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광경과 관계를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지금 그 부녀는 어떤 사이가 되었을까. 친구처럼 잘 지내는 아빠와 딸이 되어있을 것이 분명하다. 아버지가 딸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다정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2010년쯤이었을 테니, 지금은 초등학생이 되어있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아빠와 딸은 서로 잘 소통하는 사이로 지내고 있겠지.


지금은 옆 동에서 아빠 소리보다 아이의 목소리가 더 들린다. "아빠~~ 아빠~~~" 한다. 나도 "아빠~ 아빠~" 하고 불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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