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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Sep 15. 2022

온기 우편함


    

<온기 우편함>

소중한 고민을 익명으로 보내주시면 손편지로 답장을 전해 드립니다.”     


⓵ 소중한 고민을 적어주세요.

⓶ 답장 받으실 주소를 꼭적어주세요.

⓷ 온기우편함에 편지를 쏘옥 ~

⓸ 3~4주 후에 답장이 도착할 거예요.     


손편지로 온기를 전하는 온기우편함입니다.”          




아침저녁 온기우편함을 만난다. 색깔도 노란색으로 따뜻함이 묻어 나온다. 길거리에 있는 이 우편함이 생소하지만 지나칠 때마다 마음이 훈훈해진다.     


한가족 세지붕이라는 드라마처럼 다양한 가족들이 서로 함께 지내던 때, 할아버지, 아버지, 자식들이 함께 옹기종기 살았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점점 더 1인 가구의 수도 늘어나고, 고독사도 많이 늘어난다. 핵가족화가 편리하면서도 때론 고립감과 외로움을 더 가중시킨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살 때 일을 마치고 문을 열고 원룸에 들어서면 차갑게 식은 방과 어둠이 짙게 깔린 방의 분위기가 나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하루 종일 사람에 치여 위로받고 싶은 집이었지만 나를 더 쓸쓸하게 만들었다. 


원룸에 처음에 살 때는 텔레비전도 없어 집에 와도 대화할 상대도 없었고, 스트레스조차도 풀 수 없었다. 점점 우울해졌다. 어느 정도 해소할 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없으니, 사회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고이 간직한 채 다음날 또다시 일터로 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외로움과 스트레스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계속 돌고 돌았다. 그러다가 가끔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외롭다는 표현을 하면 나의 적적하고, 쓸쓸하고, 외로운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과 함께 평생을 살던 사람이 갑자기 원룸에 살더니, 나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고 전화가 왔던 적도 있다. 사람은 겪어봐야 한다. 함부로 판단하거나 아는 체하면 안 된다.


나 혼자 살면서 고독사를 걱정했고, 평생 혼자 살 것 같다는 생각에 노년까지도 걱정을 했었다. 고독사 관련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나와 무관하지 않게 느껴져 챙겨봤을 정도이다. 그러다가 엄마와 함께 사니 혼자 살 때 느끼는 외로움은 없어졌다. 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를 반겨주는 엄마가 있다. 그것이 나에게 큰 위로와 위안을 준다.     


혼자 사는 인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혼자 사는 게 행복한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고독감이나 외로움, 이 세상에 홀로인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럴 때 누군가 옆에서 함께 있어주거나, “밥 한 끼 하자”는 전화 연락이 순간적으로 몰려오는 외로운 감정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해 준다. 사람은 혼자서 평생 살 수 없다. 맺고 맺어지는 관계를 통해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장 힘든 것도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인간관계의 고민과 번뇌가 뒤따른다.


인터넷 쇼핑몰이 잘 안돼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너무 힘들고, 지치고, 막막했다. 계속 같은 삶이 지속될까 봐 불안하던 때에 엎친데 덮친 겹으로 사람과의 관계도 안 좋았다. 그때 나는 청소년 상담 카톡에 SOS을 청했다. 나는 성인이었다. 그렇게 청소년 상담 카톡이라도 부여잡고 싶을 정도로 간절했다. 가능할까 걱정하며 신청했는데 너무도 친절하게 상담해준 상담사 덕분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힘들 때는 오히려 가까운 친구나 지인보다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에게 상처받는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청소년은 아니지만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사신 상담사의 말에 그 순간의 불안과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나의 경험 때문일까 나는 아침저녁으로 스치는 온기우편함을 그저 그런 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간절한 편지가 또 다른 누군가의 편지로 인해 웃을 수도 있고, 위로받을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다시 삶을 살아낼 수도 있는 자신감과 희망을 품을 수도 있으니,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지 못한다. 한 번씩 본다.


어릴 적 친구들과의 편지, 펜팔 친구와의 편지, 군인 아저씨와의 편지는 직접 만나거나 전화 통화로 느끼지 못하는 감정과 기다림이 있었다. 온기편지함에 부친 편지에 대해 누군가 손으로 정성스럽게 쓴 답장을 보내준다면, 지금 시대의 메일이나 DM같이 즉각적인 의사소통에서 느끼는 감정하고 분명 다른 감정을 경험할 것이다. 


친구에게, 군인 아저씨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며 우체국 아저씨를 손꼽아 기다렸던 그때 그 순간의 감정은 다시 못 올 순간이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간 것 같다.      


온기우편함에 용기 내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려보는 것도 고민, 불안이 있는 사람에게 많은 위로가 될 것이다. 스무 살 초반 나는 상담 게시판을 통해 교육에 대해서 문의했었고, 정성스럽게 답변 주신 상담사 덕분에 인생의 행로를 바꾸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때의 상담은 프린트해 소중히 보관 중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경험을 말하자면, 내가 선택하지 않는 나의 삶 때문에 취업 시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었고, 차별을 받았었다. 너무 화가 나서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그 당시 여성부 장관에게 글을 썼다. 답장은 기대하지 않고 글을 썼다. 한참 뒤 답장이 왔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의 진심 어린 답장으로 사회를 향한 주체할 수 없는 분노을 조금은 삭힐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때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도 온기우편함에 나의 고민을 쓰고 싶다. 너무 잘난 사람들과 일하니, 가끔 그들의 태도가 역겹다. 자신들이 상당히 잘난 것처럼 은근히 말하는 태도가 사실 좀스럽다. 자신들의 분야에서는 잘났지만 그 외에는 더 모를 수도 있는데 자신들이 다 아는 것처럼 뻔뻔한 태도로 말하는 행동에 조금씩 질리고 있다. 그전에도 잘난 사람들하고 일했는데 그들에게서 느끼지 않았던 또 다른 분류의 잘난 사람들이다. 내가 볼 때 같잖다. 눈꼴사납다. 나도 지금 답답한 마음을 누군가에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나 아직은 버틸만한다. 


막막하고, 힘들고, 상처 입고, 가슴 아프지만 쉽게 꺼내지 못하는 말을 편지에 꾹꾹 눌러 담아 보내보면 어떨까. 의외로 많은 힘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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