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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Oct 17. 2022

추억을 되살려주다

음향 좋은 오디오를 갖고 싶은 욕심이 있다.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집도 작고, 아직은 아니다. 집에 CD, 카세트테이프, USB 모두 작동하는 작은 오디오가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모반듯하거나 동그라면 그저 동그랗게 생긴 모양을 좋아한다. 네모도 아니고 동그라미도 아닌 어중간한 모양의 오디오가 싫었지만, 구매 당시 가장 합리적인 가격이라 구매했던 오디오였다.


이십 대 때 카세트테이프를 즐겨 들었고, 음반 가게에 들어가 카세트테이프 사는 것을 좋아했다. 돈이 없던 시절에도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 발표되면 으레 음반 가게 들러 의류 쇼핑보다 진지한 태도로 음반을 살펴보다가 구매했었다. 나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카세트테이프가 어느 순간 CD 플레이어에게 자리를 내주고, 다시 USB 플레이어에 자리를 내주며 설 곳을 잃어버렸다.


내가 좋아했던 오디오가 고장 나는 바람에 네모도 아니고 동그란 모양도 아닌 어중간한 모양의 오디오를 샀지만 희한하게 내장되어있던 카세트 플레이어에 손이 가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저 음악이 듣고 싶어 산 기계라 정을 주지 않았나 보다. 카세트 플레이어를 작동하기보다는 보통 USB를 꽂고 노래를 들었다. 그러다 보니 가수 이름이며 노래 제목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카세트테이프를 구매할 때는 대게 가수 위주로 앨범을 샀고, 구매 후 한동안 구매한 카세트테이프를 줄기차게 반복해 들었고, 앨범 안에 있는 가사집을  바닥에 펼쳐가며 가사를 보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런 이유에서 일까. 음악이 흘러나오면 자주 들었던 노래는 제목은 모르더라도 누구의 노래인지 대강 알 수 있다.


여러 카세트테이프 중 내가 듣고 싶은 가수의 카세트테이프를 고른 뒤 손수 카세트 플레이어에 투입해 버튼을 눌러야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수고로운 과정 때문에 더 정확하게 기억해내는 듯싶다.


어느 순간 UBS로 노래를 듣게 되면서 특정 가수의 노래를 반복 청취해도 그 노래를 부른 가수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한다. 예전처럼 가사집을 펼쳐놓고 따라 부른 적도 거의 없거니와 쉽게 쉽게 음악 재생이 되기 때문에 기억해내는 과정이 너무 쉽고, 짧을 뿐만 아니라 가사집을 펼쳐놓고 수십 번 반복한 행위가 사라졌으니 기억의 저장도 얕을 수밖에 없다. 이럴 때 보면 사람이 좀 편리하라고 만든 도구로 인해 오히려 사람이 더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을 든다.


마음에 안 들던 오디오가 조금 잘 안되었지만 그렇다고 심각하게 고장 난 정도는 아니었음에도 바꾸고 싶었다. 한 기계에 여러 가지 기능이 있으면 제대로 된 기능 구현이 안 되는 것 같다. 기계도 단순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로지 카세트 플레이어 기능과 라디오 기능 위주로 된 것만 찾았다. 지금까지 소유하고 있는 카세트테이프의 아날로그 감성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가을날이기 때문이다.


카세트테이프와 라디오가 되는 오디오를 구매하고 물건을 받은 날,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들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네모도 아니고, 동그란 것도 아닌 오디오보다 훨씬 음향이 좋았다. 기계에 많은 기능을 넣어서는 좋을 것이 없다는 나만의 결론을 다시 한번 냈다. 잘 샀다.


사치를 부렸지만 이런 사치는 행복한 사치이다. 그동안 묵혀 놓았던 카세트테이프를 하나둘씩 꺼내 음악을 청취해야겠다. 산책하면서, 버스 안에서, 여행을 다니면서 이어폰을 꽂고 즐겨 들었던 음악을 다시 한번 꺼내 들고, 그 옛날 감성팔이 여행 좀 떠날 볼 참이다.


오늘은 이문세 앨범을 꺼내 들었다. 이문세 노래를 한참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팔십만 원 자동차로 혼자 드라이브하면서 즐겨 듣던 이문세 노래가 생각나는 밤이다. 그 시절이 그립다. 가을날의 감성을 물씬 풍기게 해주는 카세트 플레이어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날이다. 이문세의 노래를 들으니 별빛이 보이는 허브나라 야외 공연장에서 이문세 콘서트를 본 날이 떠오른다. 예전처럼 콘서트를 다니지 못하지만, 다시 콘서트 갈 날을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며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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